▲ 김태순 대표기자

정감록은 조선 말기에 등장한 예언서다. 정도령은 ‘정감록’에 나오는 인물이다. 조선이 망하면 계룡산에 정도령이라는 진인이 새로운 나라를 세울 사람이라 했다. 정도령은 민심에 따라 사회를 바꾸고 새 시대를 이끌 지도자인 셈이다. 조선 왕조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민중의 저항 이데올로기’로 형성된 것이다.

충청 출신은 김종필, 이회창, 이인제 등이 대권도전에 나섰지만 모두 실패했다.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영호남 연고지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았지만 이들은 충청권에서 그다지 표를 얻지 못했다. 반은 그들의 탓이고 반은 충청인의 기질 탓이다.

하지만 요즘 충청인들 사이에 반기문 총장 대망론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인구마저도 충청이 호남에 앞서 ‘영충호 시대’가 도래한 만큼 “이제 충청도서 대통령이 나올 때가 됐다”는 것이다.

반 총장은 충청도 출신에 나이나 지역, 계층별로 고른 지지율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인재로 유능하면서도 중용의 이미지다. 흠이라면 ‘색깔이 없다’거나 ‘보수적’이라는 비판적 시선이 따라다닌다. 반 총장은 상대를 편하게 하는 마력을 가진 ‘연성의 리더십’이 몸에 밴 사람이다. 유엔 사무총장 연임에 성공했다는 것으로 ‘반기문=글러벌 리더십’ 입증된 셈이다.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가 최근 발표한 차기대선주자 선호도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압도적 1위(37.7%)를 기록해 정가 안팎에 적잖은 파장을 미치고 있다. 이는 2위 박원순 서울시장(13.5%)의 세 배정도이고 여권 주자 중 선두인 새누리당 김무성 최고위원(4.9%)과는 여덟배 정도의 격차다. 반 총장에 대한 선호·지지도가 지난해 이어 올해도 지속적·압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요즘 새누리당 친박계와 새정치연합 비노계(동교동계)가 서로 차기 대권 주자로 반 총장을 언급하는 등 ‘모셔오기 경쟁’이 치열하다. 정치권이 반 총장 영입에 경쟁적으로 나선 것은 충청도 출신에 화려한 이력과 중도적 이미지를 가진 정치적인 상품성 때문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그리고 마땅한 주자가 없을 때 늘 바깥으로 눈을 돌리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에 더 큰 원인이라 볼 수 있다.

‘반기문 대망론’은 지난 이명박 정부 때부터 나왔다. 여권에서는 친이계를 중심으로 반 총장의 영입을 시도한 적이 있다. 당시 야당이던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2012년 대선 직전에 직접 영입을 시도했다.

반기문 총장의 임기는 2016년 12월 31일까지다. 2017년 제19대 대선을 1년가량 남겨 둔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반 총장이 결심한다면 대선 출마는 가능한 셈이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그의 노벨평화상 수상과 대북 특사 등이 성사된다면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반 총장 롤모델 발트하임... 대권의지가 중요

반 총장이 대권 도전에 나선다면 롤모델이 될 만한 인물이 오스트리아의 정치인 쿠르트 발트하임이다. 1972년부터 81년까지 UN사무총장을 지낸 그는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1986년 대선에 도전해 오스트리아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사에서 정당체제 밖에서 키운 대망론이 성공한 적은 없었다. 1997년 박찬종 변호사, 2006년 고건 총리, 2012년 안철수 교수까지 현대판 정도령은 꾸준히 출현해 정치판을 흔들었다. 하지만 매번 대권에는 이르지 못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4일은 ‘반기문 대망론’에 대해 “대선 출마 없다. 유엔 직무 수행 우려된다”며 보도자제 요청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대선 불출마’ 선언은 하지 않았다. 논란을 잠재우기 보단 의문만 키운 셈이다.

정감록의 정도령은 조선왕조에 저항하는 백성의 의지가 함축된 메시아다. 요즘 정치권에 대한 불만과 불신, 새 시대에 대한 욕구는 제3의 정치인을 찾고 있다. 반기문 총장이 정도령을 넘어 대권에 도전해 성공할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