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

조선시대 성균관은 오늘날의 대학이다. 성균관의 수장인 대사성(大司成)은 총장에 해당되며 사대부라면 가장 꿈꾸던 영예로운 최고의 자리였다. 고전 춘향전에서도 이도령과 춘향이 대사성과 정렬부인에 오른 것으로 해피앤딩을 삼았다.

대사성은 아무나 임명되지 않았다. 학문과 인품이 남달라야 했으며 학생들인 생원. 진사들의 존경을 받아야 했다. 선조 때 퇴계 이황은 당대의 존경받는 학자였으나 대사성에 임명 되자마자 직을 내 놓고 안동으로 낙향한다. 퇴계는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아 직무를 수행하지 못할 처지였던 모양이다.

조선시대 역대 대사성들의 면면을 보면 대개는 대쪽 같은 성품을 지닌 인물이 많았던 것 같다. 조선 초기 국가기틀을 만든 권근 정도전, 선조 때 추상같았던 성품의 송강 정철도 대사성을 지낸 인물이다. 선조는 자신의 유시마저 토를 달고 부당함을 지적하는 송강을 속으로는 미워했으면서도 그 충의를 무한 신뢰했다. 중신들이 대사성직에서 파직할 것을 주청하자 선조는 이렇게 변호했다.

“정철은 마음이 곧고 행실은 바르나 그 말이 곧아 용납되지 못하고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샀다. 그러나 그가 힘을 다해 직무에 충실했던 점과 맑고 충직한 절의 때문에 초목조차 그 이름을 다 기억한다. 이른바 백관 중의 독수리요, 대궐의 맹호라 할 만하다.”

성균관에서는 ‘공관(空館)’이라는 스트라이크가 있었다. 선비들이 공부를 하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와 자신들의 주장을 임금에게 표시하는 것을 말한다. 기록을 보면 조선왕조시대 96차례나 공관이 있었다고 한다.

‘공관’은 성균관 학생들의 특권이기도 했으나 임금의 심기를 거슬리는 것으로 주모자들이 체포되거나 투옥되는 일들이 많았다. 세종이 유림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궐 안에 내불당을 짓고자 했다. 이때 성균관이 불만표시로 공관을 했다.

세종은 유생들이 집단 시위를 통해 임금마저 협박하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주모자를 처벌하려 했으나 도승지 이사철(李思哲)이 간곡히 만류하자 한발 물러섰다. 공관사태가 장기화 되자 세종은 영의정 황희(黃喜)에게 특별히 해결토록 지시한다. 노 정승이 일일이 유생들의 집을 방문하여 성균관에 돌아 올 것을 설득함으로써 해결되었다.

숙종연간에 대성전(大成殿) 건물 옆에 있던 회나무가 벼락을 맞았다. 영의정 김창집은 왕에게 글을 올려 성균관 유생들이 예절이 바르지 못해 하늘이 재이(災異)를 내린 것이라고 아뢰었다. 유생들은 분노하여 영의정이 자신들을 모독했다며 권당을 결행한다. 고종 때는 면암 최익현의 상소를 문제 삼아 유생들이 공관을 했는데 고종은 그 도가 지나치다고 유생들을 귀양 보내거나 처벌을 단행했다.

최근 청주대 사태가 지역의 최대 이슈가 되고 있다. 대학의 부실 경영을 문제 삼아 학생은 물론 교수, 동문회 까지 나서 총장 퇴진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학생들은 수업거부도 불사하겠다고 한다. 수업거부 사태는 조선시대 권당의 유풍이다.

필자는 40년 전 대학출입기자로 청주 양대 사학인 청주대와 서원대(당시는 청주여자사범대학)의 발전과정을 지켜본 장본인이다. 두 대학의 발전 기초는 작고하신 두 분의 노력과 근검으로 이루어진 것을 기억한다.

김 전 청주대총장은 전기요금을 절약하기 위해 집무실의 전등까지 소등하며 컴컴한데서 집무를 봤다. 대학 박물관을 준비 할 때는 자신의 집에 소장하고 있던 선대의 유물을 모두 기증하여 그 토대를 만들기도 했다. 운호학원(현 서원학원) 설립자 강기용학장은 6.25 직후 부부가 직접 리어커로 벽돌을 나르면서 교사를 지었다. 서원학원도 설립자 유족들이 학원을 잃은 한으로 교육부장관을 상대로 현 이사장에 대한 ‘이사 선임 처분 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청주의 양대 사학 성장역사를 지켜본 필자로서는 아쉽기만 하다.

학생들의 의사표시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수업거부라는 최악의 상태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합의점을 잘 찾아 어려움을 극복하고 더욱 발전하는 토대를 마련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