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

조선시대 국왕은 외직으로 부임하는 관리들이 있으면 어전으로 불러 형옥에 대한 책무를 유시했다. ‘형(刑)의 사용을 신중히 하는 것은 수령의 선무(先務)이며, 형벌을 가볍게 하는 것은 애민(愛民)의 책무이다’ 그러면서 왕은 백성들에게 가혹하지 않은 형벌(恤刑)을 특별히 당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부임하여 어명을 지킨 관리가 얼마나 됐을까. 고전 춘향전의 남원부사 변학도는 형의 신중은 물론 애민을 무시한 폭관의 전형이다. 죽음을 앞둔 소녀 춘향이 옥중에서 한양에서 돌아오지 않는 무심한 이도령을 그리워하는 비탄의 노래 ‘쑥대머리’를 들어 보자

(전략)...옥방형상을 살펴보니 앞문에는 살만 남고 뒷벽에는 외만 남어 바람은 우루루루 살 쏜듯이 드려분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 찬 자리에 생각난 것이 임뿐이라. 보고 지고 보고 지고 한양낭군 보고지고...(중략)...아무도 모르게 울음을 운다.(하략)

바람을 막아줄 외벽마저 허술했다는 적막 옥방. 다산 정약용은 감옥을‘ 이승의 지옥’이라고 까지 표현한바 있다. 얼마나 방한이 안됐던지 왕조실록을 보면 중종 13년 겨울에 죄수 30여 명이 얼어 죽는 사건이 발생 했다.

조선 말 입국해 포교활동을 펼치다 관원에 체포 된 가톨릭 주교 펠릭스 클레르 리델(1830~1884)은 탈출하여 기록을 남겼다. 그가 쓴 책에는 조선후기의 전옥(典獄)의 참상이 리얼하게 묘사되고 있다.

이 기록을 보면 나졸들의 구타로 죽은 죄수들의 시체가 몰래 성문 밖에 버려지기도 했다. 도둑들에게는 소금도 없는 밥을 먹인 대신 경제사범인 채무 죄수들은 대우가 조금 달랐다. 가족들의 면회는 물론 사식까지 받아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수령들은 곧잘 죄수들을 불러내 가혹한 형벌을 자행했다. 굶주리고 있는 도둑 죄수들 앞에서는 큰 잔치를 벌여 고통을 주기도 했다.

부패한 지방 수령들의 밥은 소위 뒤(빽)가 없는 부자들이었다. 사또는 돈이 필요하면 아전들을 시켜 만만한 부자를 잡아 가둔 뒤 대청에서 문초를 한다.

‘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사또.. 저는 죄 지은 것이 없습니다..대체 무슨 일이온지..“
‘이놈이 네가 한 죄를 몰라? 네가 부모제사를 모시면서 제수를 소홀히 한 죄를 몰라..?’
‘저는 제례에 따라 했는뎁쇼?‘
‘이놈이 정말..지난 제사 때 써야 할 제수를 쓰지 않았다고 하는데..저 불효막심한 놈을 매우 쳐라!’

형리가 주리를 틀고 곤장을 치면 부자는 영문도 모른 채 피를 토하는 고통을 당한다. 이때 아전들이 가족들에게 은밀히 찾아가 석방 흥정을 하는 것이다. 부자는 돈을 내 놓든지 아니면 사또가 좋아하는 땅을 주고 풀려나는 것이다.

가난한 백성들은 가난한대로 수탈의 대상이 되었으며 관에 납부해야 할 세금을 내지 않으면 옥에 갇히거나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집을 빼앗긴 백성들은 걸인으로 전락하고 노비로 팔려갔다. 탐관오리들의 이런 가렴주구(苛斂誅求)에 맞서 폭발한 것이 동학혁명이 아닌가.

현재 배임, 횡령등 죄목으로 형을 살고 있는 일부재벌 회장들의 석방을 놓고 여야가 각기 다른 시각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형을 살았으면 죄 값을 치렀다는 동정론이 있는가하면 재벌이라고 특혜를 주면 안 된다는 부정적 견해도 있다.

시중에는 회장들이 괘씸죄에 걸려 고생하고 있다는 유언비어도 나돌고 있다. 이번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어느 의원은 ‘재벌 회장들이라 더 가혹하게 당하는 것이 아닌가(有錢有罪)’라고 석방 쪽에 무게를 둔 발언을 했다. 현 정부가 법 집행을 올바르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석방하고 싶어도 반대 눈치를 너무 보는 것은 아닌지 헷갈린다.

아무리 시설이 근대화 됐다고 하나 옥중생활을 겪어본 사람들은 다시는 가지 말아야 할 곳이 감옥이라고 한다. 날씨도 추어지고 나라 경제 상황을 감안한다면 재벌 회장들에게 휼형(恤刑)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