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

조선 숙종대 현묵자(玄默子) 홍만종이 지은 순오지(旬五志)에 재미난 얘기가 기록된다. 영남 선비가 한양을 가는 도중에 단양 죽령을 넘게 됐다. 날이 저물자 산중의 외딴집을 찾아 하루 밤을 묵게 된다. 집안에는 백발노인이 있었는데 눈이 총명하고 살결은 어린아이 같이 고왔다.

노인은 선비에게 먹을 것을 내다 놓았다. 소반에 담겨진 음식은 솔잎향이 나는 다식 같은 것이었다. 노인은 평생 이것만을 먹고 살았는데 조금도 병을 앓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선비는 성명을 묻고 노인에게 나이를 물었다. 그런데 노인은 자신의 나이를 알지 못했다. 선비는 노인을 신선으로 믿었으며 현묵자는 이 일화를 장수 비결의 사례로 소개한 것이다.

장생술(長生術)에 흥미를 느낀 현묵자는 벼슬을 외면하고 지금의 세종시 인근 부강 땅에서 단양 신선처럼 살았다. 많은 저술을 남기고 83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의 나이로는 장수한 셈이다.

영생을 꿈꾼 진시황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남동녀 3천명을 동방으로 보냈다. 건장한 무사나 어른들을 보내지 않고 왜 어린이들을 선발하여 보낸 것일까. 시황은 노기(老氣)를 우려해 소년소녀들로 하여금 불로초를 지참하여 운반토록 한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의 방중술이나 기문(奇聞)을 보면 황제들은 기(氣)를 빼앗기는 것을 우려해 27세 이전의 어린 궁녀들 하고만 잠자리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일들이 오히려 황제의 목숨을 재촉하거나 원한을 얻어 피살되는 경우까지 있었다. 고대 은나라 폭군 주왕(紂王)은 쾌락과 회춘을 위해 술로 연못을 만들고 많은 어린궁녀들을 발가벗겨 인간 병풍을 만들어 주지육림(酒池肉林)이란 고사를 만들었다.

조선 사회에서도 자식들이 늙은 부친에게 동녀로 하여금 시중들게 하는 ‘웃방애기’ 풍속이 있었지만 영조는 66세에 15세 나이의 정순왕후를 후비로 간택했다. 손녀 딸 같은 나이의 중전을 얻은 영조는 팔순에도 건강했으며 조선 역대 임금 중 가장 오래 살았다.

노년에 사랑하는 배우자가 있어야 장수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되고 있다. 실례로 호주 RMIT 대학의 마크 코언 교수는 연구를 통해 사람은 물론 식물도 사랑하면 오래 산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스라엘에서는 남성 심장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독신보다는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커플들이 병세가 호전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들을 뒤주에 갇혀 죽인 회한과 이인좌의 난으로 스트레스가 많았던 영조의 장수 비결은 젊은 왕후 정순왕후의 사랑이 카타르시스요 회춘으로 작용했는지 모른다.

요즈음 한국사회에 ‘노노족’이란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영어의 '노(No)'와 한자어 '노(老)'가 합쳐진 단어다. 즉 '늙지 않은 노인', '나이는 들었지만 젊게 사는 노인'을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유행을 따르며 명품을 좋아하고 멋을 부릴 줄 아는 로맨스그레이들을 노노족이라고 호칭한다는 견해도 있다.

어떻게 하면 젊게 보이며 활력 있는 노년이 될 수 있을까. 요즈음 각종 모임에서 실제 나이에 ‘0.7~0.8을 곱하는 대화가 유행하고 있다. 현재 나이에 0.7을 곱해 서로 웃고 즐기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실제 나이가 70세인 사람을 0.7을 곱해 49세로 대우하는 것이다.

6.25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 장군은 미국 시인 사무엘 울맨(Samuel Ullman)의 ‘청춘(YOUTH)’이란 시를 벽에다 걸고 스스로 젊은 생각과 열정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사람이 늙는 것이 아니요, 꿈을 저버릴 때 늙어가는 것’이라는 대목을 가장 좋아했다.

한국은 불행하게도 노인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노인들의 행복지수도 세계 50위로 가까운 일본, 베트남에도 뒤진 서열이다. 불행한 노년의 인생에 활력을 불어넣고 제2모작의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적 ‘노노희망 프로그램’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가까운 미래 ‘늙은 대한민국’이란 절망적 호칭을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