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

신체가 건장한 옛날 장수들은 말술을 마셨다. 천하의 조조는 독주를 즐겼으며 낭만적인 시로 시름을 잊었다. 조조가 가장 즐긴 술은 증류주인 두강주(杜康酒). 이 술은 알콜도수 60도가 넘는 바이주(白酒)로 입에 넣으면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을 주는 술이다. 조조는 두강주에 취하면 ‘단행가(短行歌)’을 부르며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했다. 

“술잔을 잡고 노래 부르네 /인생이 살면 얼마나 사는가? /모름지기 아침이슬과 같으니 /지나간 세월의 고통이 얼마였던가? /불끈 주먹 쥐고 울분을 토해도 /지나간 근심은 잊을 수 없어라 /아! 어찌하면 잊을 수 있을까 /오직 두강주뿐인 것을”

명장들의 음주행태를 보면 의외로 절도가 있었고 차분했다. 세조에게 죽음을 당한 장군 김종서도 애주가였다. 한잔 술도 격식을 갖추어 마시면서 시가(詩歌)를 꼭 곁들였다고 한다. 임진전쟁 때 행주대첩의 명장 권율도 술을 마실 때는 의관을 정제하고 밤새 취했다. 휘하 장수들과 말술을 들이켰지만 흐트러진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충무공 이순신장군도 술을 좋아했다. 장군은 하루 종일 마셔도 끄떡 안 할 정도로 강했으며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자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지 않았다고 한다. 장군은 녹도(鹿島) 만호 정운(鄭運)의 장례 때에도 술을 영전에 바치며 통곡했다. 그렇다고 이 장군이 아무 때나 술을 마신 것은 아니었다. 부하들의 사기나 백성들을 어루만질 때는 함께 즐겼지만 전시에는 일체 마시지 않았다. 술에 대한 금기를 잘 지켰다고 한다.

그러나 명장이라도 술에 대해 금도를 지키지 못하면 불행했다. 유능하고 충성스런 장수들이 그만 폭주로 벼슬길에서 낙마하거나 제 명대로 살지 못했다. 말술을 즐긴 장비. 술에 취하면 형격인 관우에게도 주정을 부렸으며 장졸들을 괴롭혀 맏형 유비의 훈계를 자주 들었다. 장비는 오(吳)나라와 전쟁 시 술에 취해 잠을 자다 부하 장달에게 목이 잘렸다. 젊은 나이로 장군이 된 남이(南怡)는 한 연회에서 술에 취해 임금을 비방한 죄로 역적으로 몰려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을 당했다.

괴산 출신 서예가이며 의사였던 고(故) 김사달(金思達)박사는 천재로 불렸던 분이다. 김박사는 문향(文香)을 즐기는 애주가였으며 지병으로 80년대 중반 세상을 떠났는데 술에 관한 일화도 많이 전한다.

생전에 고인은 필자에게 주당의 18품계를 들려준 적이 있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 선생이 주당의 급수를 18품계로 매긴 것을 전한 것인데 김박사는 나름대로 주당을 주학(酒學), 주졸(酒卒), 주호(酒豪), 주선(酒仙), 주신(酒神)의 5단계 경지로 나눴다. 주당에 입문한 사람을 주학, 어느 정도 술을 먹으면 주졸, 술맛을 터득하여 밤새는 줄 모르면 주호의 반열에 든다는 것이다.

주당 용어에 ‘칠불고(七不顧)’라는 말이 있다. 모름지기 주당이라면 7가지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1. 청탁(淸濁)불고 - 술의 질을 따지지 않음 /2. 좌립(座立)불고 -술 마시는 자리를 가리지 않음 /3. 주야(晝夜)불고 - 밤과 낮이 없음 /4. 노소(老少)불고- 술 마시는 상대 나이를 묻지 않음 /5. 희비(喜悲)불고- 기쁜 일 슬픈 일을 개의치 않음 /6. 가사(家事)불고 - 마시는 시간만큼은 집안일을 모두 잊음 /7. 생사(生死)불고-마시다 죽어도 좋음.

1군사령관이 대통령 해외 순방 때 부대를 이탈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 고향 모교를 방문하여 폭음한 것이 알려져 전격 전역됐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만취, 품위를 손상시켰다니 ‘칠불고’의 경지까지 갔던 모양이다. 하루저녁 술 몇 잔에 그만 평생 쌓아온 아까운 명예와 공훈이 순식간에 날아간 것이다.

지금 북한은 우리 대한민국을 위협하며 단거리 발사체를 쏴대고 있다. 이럴 때 최전방에서 북과 대치하는 야전 사령관이 폭음으로 자신의 위상과 임무를 망각할 수 있는가. 예전의 명장들처럼 군 장성이라면 술에 대해서만큼은 금기를 실천해야 하고 또 본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명장(名將)의 칭호를 받고 영예로움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