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

예절 교육이 비교적 엄격한 옛날 유교사회에서도 부모가 기대한 만큼의 자녀 성공이이루어 진 것은 아니었다.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존중하여 세 살부터 유서(儒書)를 달달 외게 했지만 패륜과 난륜으로 부모의 마음에 깊은 상처 뿐 아니라 화를 불러온 사례가 적지 않다.

태조 이성계와 둘째아들 방원(태종)의 고사를 보자. 이성계는 방원이 자신을 왕으로 옹립한 일등 공로자이지만 가장 미워했다. 방원은 성품이 과격하여 아버지의 의중을 무시하고 나라의 근간을 이룩한 개국공신 삼봉 정도전을 도륙했기 때문이었다.

방원의 무참한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세자로 책봉된 17세 소년 이복동생을 살해하고 그 형제까지 도륙했다. 방원의 불효가 얼마나 미웠던지 몇 번이고 활로 쏘아 죽이려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태조는 하늘을 우러러 자식 잘 못 둔 죄를 사죄하고 가슴 아픈 고통으로 살다 눈을 감았다.

조선시대 명재상으로 회자되는 황희는 유독 아들 농사를 잘못 지어 조야의 비난을 받았다. 황희의 적자와 서자들이 한결 문제를 일으켰다. 둘째 아들 황보신은 아버지의 후광으로 대궐을 드나들게 됐는데 궁중에서 패물을 훔쳐다가 애첩에게 준 것이 발각되었다. 이 사건으로 황보신이 하사받은 토지를 반납하게 되자 형 황치신이 동생의 기름진 땅과 자신의 돌밭을 바꿔치기 하려다 들통 났다.

또 중생이란 서자가 하나 있었다. 중생도 세자궁에서 일을 보았는데 도벽이 있었다. 세자궁에서 몰래 금잔을 훔치다가 발각된 것이다. 이것이 문제 되자 황정승은 중생의 성을 조씨로 바꾸도록 하고 평생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황희의 자녀교육은 매우 관대했다. 아들은 물론 종들의 자식들과 어울려 뒹굴면서 수염을 잡아도 그냥 허허 웃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것이 자녀 교육에 독이 된 것은 아니었는지.

이에 반해 엄하게 아들을 잘 키운 선비들은 미관말직이라도 입신양명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한음(漢陰) 이덕형은 약관 20세 문과에 급제, 고속 승진하여 32세에 대제학이 되고, 42세 영의정에 올랐다. 부친 이민성(李民聖) 보다 더 높은 직위에 올라 가문의 자랑이 되었다. 부친은 죽어서까지 아들 덕에 영의정으로 추증(追贈)되었으며 한음의 묘 위쪽에 묻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구정승골의 주인공이 된다.
조선시대 효자 서포 김만중(金萬重). 자신이 선천에 유배되었을 때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한문소설 ‘구운몽’을 지어 바친다. 후에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음이 밝혀져 억울함이 풀렸으며 정문(旌門)과 함께 부모들의 관직도 회복되었다.

북송(北宋) 때 자치통감(資治通鑑)을 편찬한 대학자 사마광(司馬光)은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은 재앙을 부르는 씨앗’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범(家範)’이란 글에서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으로 교만과 사치, 지나친 총애와 용돈’이라고 지적했다. 사마광은 ‘예부터 자식을 사랑할 줄만 알고 가르칠 줄을 몰라 위태롭고 욕되고 혼란스러워져 멸망에 이른 자가 셀 수도 없이 많다’고 쓴 소리를 했다.

집 안에서 부모가 자녀들을 꾸짖지 않으면 잘못된 행실이 즉각 나타난다’고 지적한 이는 중국 육조시대(六朝時代) 말기 문학가 안지추(顔之推). 그가 가족을 훈계하기 위해 지은 ‘안씨가훈(顔氏家訓)’에는 ’형벌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으면 백성들이 수족(手足)을 둘 곳이 없는 것처럼 집안에서도 관대함 보다는 엄격함이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근 남경필 경기지사 아들이 군대에서 동료 부하들에게 가혹한 행위를 하다 적발돼 아버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얼마 전에도 정치인이나 재벌기업 회장등 부유층 아들들이 일탈된 행동으로 아버지를 곤경에 빠뜨린 경우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생활한 2세 해외 유학파들이라서 가정교육이 빈곤했던 것이 아닌가.

이유 없이 자식을 때린다면 폭력이다. 그러나 자식의 잘못을 고치려고 회초리를 드는 것은 사랑의 매다. 한국가정에서의 밥상머리 교육의 부활을 강조하는 교육자들이 많다. 진정 자녀를 사랑하는 가정교육이 어떤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