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병익 前 단재교육연수원장

초등학교 저학년 방학이면 어머니가 채워주신 농주(農酒)를 들고 아버지 농사일을 체험하던 추억이 짙다. 아버지께선 새참으로 한 잔 하시기 전, 반잔 쯤을 고수레라는 이름으로 자연에 돌려주 셨다. ‘콩 한 쪽도 나누라’ 양속을 익히면서 아버지 곁에서 신날 때, 빙그레 웃으시며 “방학이 그렇게 좋아?” 물어 보셨지만 오히려 방학을 더 기다린 건 분명 아버지란 걸 이제야 느끼는 바보로 산다. 아이를 다 키워내고 보니 무릎을 치며 후회할 일도 많다. 세상엔 바른 교육을 위한 거창한 덕목과 캠페인으로 넘친다.

그러나 사람 사이 시퍼런 멍은 가정, 학교, 사회를 어렵게 만든다. 세대와 환경, 문화변인 때문일까? 두 딸의 아버지며 교육자로 40년 넘는 일기장 두께를 늘리지만, 아직도 ‘교육’ 앞엔 머뭇거려 진다. 며칠 남지 않은 방학을 아쉬워하는 아이들 모습이 역력하다. 미래야 말로 함께 어울리는 품성을 키워드로 꼽는다. 자녀들은 대부분 엄마 영향권에서만 맴돌고 있어 아빠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시끄러운 노래

‘생각없이 살다보면 그게 정답으로 굳어 버린다’고 했다. 권위의 부재를 질타하는 비유로 부모 붕괴의 대표적 신드롬이다. 잔소리가 없어도 제 할 일을 놀랄 정도로 잘하는 아이도 있다. 혼자서 일찍 일어나 집안 일을 돕고 책도 읽으며 방 정리까지 척척 해낸다. 그 반대로 방학 생활이 엉망인 아이의 경우 짜증은 오히려 독소다. 부모가 믿음 속에 묵묵히 기다리면 자녀는 무엇이든 해내고 만다. 정말, 자녀와의 작은 약속일수록 진실한 무게를 실어야 신뢰하고 따른다.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 좋다’는 그늘같은 속삭임을 깔아줘야 한다. 긍정 이미지로 자기 수용과 존중, 감정이나 행동 통제, 창조적 승화, 원만한 인간관계 등을 동시에 품는 것이 중요하다. 존재를 알아주는 걸 느끼게 될 때 놀랄 정도로 관계가 달라진다. 잔소리의 반복은 소모적인 갈등만 초래할 뿐 성품까지 비틀리게 마련이다. 지름길은 부모가 부르는 노래에 달렸다. ‘안 돼, 하지마’란 주제곡으로 더 이상 뭘 기대하랴. 사사건건 태클 보다 ‘그래, 함께 해볼까?’의 감동적인 응원을 권고해 본다.

방학은 아이들 세상의 전부다. 생각하고 본대로, 들으며 느낀대로 빼거나 보탬없이 이야기 한다. 그냥 저장하기 보다 종알종알 표현해 내는 반복을 통해 지식과 경험을 확대 재생산하여 자기를 만들어 간다. 호기심에 빠진 아이가 부모에게 묻는다. ‘입 다물어. 시끄러워 벌써 몇 번 째니?’ 소통은 고사하고 생각까지 닫게 만든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나 친구들 앞에서 더듬적 거릴 첫째 이유다. 엄마는 자녀의 얘기를 그냥 끝까지 들어만 주면 된다. 결코 길이 멀거나 돈 들어갈 일도 아니다. 방학은 시끄러워야 십상이다.

집안은 말할 것 없고 골목과 마을, 산과 계곡까지 밤낮 가리지 않고 아이들로 몹시 소란스러워야 방학이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 뛰고 저리 달려야 한다. 너무 시끄러워 해님까지 늦잠에 체할 수 있어야 폼나는 방학이다. 어린 시절, 경험의 너비와 폭에 따라 엄청난 가문을 세우고 거룩한 비전이 생겨난다. ‘엄마, 저것 좀 보세요. 하늘과 바다가 금을 그었어요’ 수평선 이란 시어를 채운다. ‘아빠, 토란잎은 물방울을 구르게 하는데요’ 텃밭에서 자연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훈육과 닦달 만으로 동심은 자랄 수 없음을 방학이 확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