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직지(直指)’가 쓰여 진 곳이 성불산(成佛山) 성불사(成佛寺)다. 직지는 이 절에 있던 백운화상(白雲和尙)이 저술한 불서(佛書)로 스님이 입적한 3년 뒤(1377AD) 청주목 흥덕사에서 활자를 주조하여 간행되었다.

직지심체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에서 나온 말로 ‘참선을 통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보면,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라는 뜻이다. 직지는 인쇄문화로서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내용은 8만대장경과 수많은 조사의 어록을 집약한 만고의 보물로 평가 되고 있다. 원로 스님들은 ‘인류 정신을 구제할 소중한 가르침’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직지가 태어난 성지(聖地) 성불산은 지금 어디일까. 후학들은 왜 청주 무심천 가에 있던 흥덕사에서 직지를 찍었으며 생전 ‘무심’을 특별히 강조했던 스님과 지금 무심천은 또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스님은 속인들에게 ‘구름처럼, 물처럼 무심하게 살라’고 가르쳤다.

“물은 졸졸 흘러 동쪽으로 큰 바다 한복판에 이르네 /물은 굽은 곳도 만나고 곧은 곳도 만나나 /이것과 저것을 따지지 않으며 /구름은 스스로 뭉쳤다가 스스로 흩어짐에 /친한 것도 소원한 것도 없다...(중략) 마음을 비우면 경계는 저절로 고요해지고 /경계가 고요해지면 마음은 저절로 여여(如如)하리라...(하략)”

기록을 보면 백운화상의 법명은 경한(景閑)이며 고려 후기 전라도 정읍에서 출생했다고 돼있다. 일찍이 승려가 된 뒤에 중국에 유학하고 귀국, 해주 안국사, 신광사의 주지를 지내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75세에 성불사에 머물면서 상·하 두 권의 ‘직지심체요절(直指)’을 저술하였으며 77세(1374AD)에 여주 취암사에서 입적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동안 학계는 스님이 직지를 편찬한 성불사를 이색이 지은 직지 서문을 감안하여 황해도 해주 성불사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 스님이 전라도 고부 출신이어서 이 지역을 지목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국에는 성불산이란 이름도 많고 성불사라고 명명한 절도 수 없이 많아 정확히 고증되지는 않았다.

30여년간 충북지역의 고적과 절터를 답사해 온 필자는 최근 부끄러운 일을 겪었다. 그것은 괴산군 괴산읍 검승리에 있는 성불산 성불사지에 대해 너무 몰랐기 때문이었다. 괴산군내 다수의 불적을 조사했으면서도 정작 성불사에 대해 주목하지 않은 점이 부끄러웠다. 최근 괴산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연구가 깊은 임각수 군수로부터 검승리 성불사의 실체를 듣게 됐다.

성불사지는 성불산 중턱에 있다. 그런데 필자는 현재 충주박물관 뜰에 안치 되어 있는 고려시대 석조보살좌상 1구의 본래 위치가 성불사지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불상은 오래 전 이 절터에서 박물관으로 옮겨진 것인데 고려후기 시대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머리에는 길 원통형 보관을 쓰고 있으며 상호는 원만하고 인자한 모습이다. 가슴에는 화려한 목걸이 장식(頸飾)이 보이고 법의는 우견편단이다. 보관과 가슴의 장식등 조각 수법으로 보아 여래상보다는 보살상의 형태다. 원통형의 관모를 쓰고 있는 보살상은 충청도, 강원도 일대에서 조사되는 유형이다. 이 불상은 고려시대 성불사의 사격(寺格)을 알려주는 중요유물로 평가 될 듯하다. 아! 그렇다면 괴산 성불사가 직지의 산실이 아니었을까.

백운화상은 입적하기 전 성불사를 떠나 경기도 여주 취암사로 주처를 옮긴다. 그리고는 2년 후 열반하신다. 여주는 성불산 아래 괴강 나루터에서 배를 타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스님은 생전에 괴산에서 여주 취암사를 자주 왕래하지는 않았을까.

성불사에서 청주 흥덕사도 멀지않은 한나절 거리다. 스님은 흥덕사에도 들러 불자들을 모아 강론했을 것으로 상정된다. 흥덕사의 비구니 묘덕은 스님을 스승으로 삼아 진정으로 존경한 제자였다. 그래서 사재를 털어 금속활자를 주조하여 직지를 찍어 널리 배포했다. 청주 무심천의 이름이 스님의 ‘무심’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필자는 직지가 태어난 성지를 괴산 성불산 성불사지로 비정하고 싶다. 앞으로 더 확대 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시대적 상황이나 지리적 여건, 고려석조보살좌상 등으로 미루어 괴산이 가장 부합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직지는 우리가 세계에 자랑하고 있는 과학사적 보물이다. 직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지가 태어난 성지 성불사를 찾아 정비하고 시대의 교육장으로 삼는 것도 사명일 것이다. 비록 불자가 아니더라도 이런 노력은 잃어버린 역사를 찾고 민족정신을 복원하는 뜻 깊은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