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

30년 전 필자는 충북 괴산 일대를 답사하면서 매우 인상 깊은 유적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칠성면 외사리에 있는 이름 없는 옛 절터였다.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당간지주만이 외롭게 서있던 절터 경작지에서 필자는 많은 양의 화려한 연화문(蓮華紋) 와당을 수습할 수 있었다.

신라 왕경 유적에서만 보았던 아름다운 와당들이 밭둑에 널려있었던 것이다. 마침 외사리에서는 경지정리가 있었던 것 같은데 연화문 와당들이 곳곳에서 발견되어 그 흥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서조문(瑞鳥紋), 비천문(飛天紋), 당초문(唐草紋)등 신라인들의 아름다운 상상이 넘치는 암막새들도 찾아졌다. (이 와당들은 현재 대청댐 문의 와당박물관에 소장됨)

이 절터는 언제 창사(創寺)되어 언제 폐사(廢寺) 된 것일까. 필자는 절터에서 찾아진 각종 기와 조각의 편년을 조사하여 이를 보고서(한국의 폐사)로 남겼다. 외사리 절터는 통일신라시대 창사되어 고려 후기까지 존속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왜 ‘외사(外寺)’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일까.

외사리 남쪽에 높이 솟은 산은 군대산 혹은 군자산이라고 불린다. 옛날 원효대사가 은거하며 수도를 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그렇다면 군대산과 외사리는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그 이후에도 괴산지역에 출장 가는 시간이면 반드시 외사리를 찾았다. 그것은 외사라는 지명이 갖고 있는 의문점을 해소하고 싶었기 때문이며 혹 다른 결정적인 단서가 찾아지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주민의 제보로 절터 아래 냇가에 비석(碑石) 도막이 굴러다닌다는 제보를 받았다. 필자는 당시 청주대박물관 팀과 함께 절터 축대 아래 방치된 비편을 찾았다. 이 비편은 현재 청주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고려 시대에 한 선사(禪師)의 생애를 기록한 금석문으로 해석되었다.

필자는 이 절터가 진흥왕대 화랑들의 전사를 위무하기 위해 제자를 지낸 ‘외사(外寺)’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버릴 수가 없었다. 삼국사기 진흥왕조에 보면 ‘왕은 외사에 나가 7일 동안이나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희생당한 전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팔관연회(八關筵會)를 열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당시 고구려와의 처절한 전쟁은 어디에서 벌어진 것일까. 6세기 중반 진흥왕은 한강을 개척하기 위해 죽령을 넘어 단양을 공격하고 계립령(鷄立嶺) 서쪽의 땅을 공격한다. 계립령 서족의 땅은 바로 괴산, 음성, 청원 등 지역이다.

가야전사를 앞세운 신라군은 단양, 괴산을 점령하고 이어 충주지역에 진출한다. 그 처절한 전쟁터였던 달천의 상류 괴강에서는 수많은 장정들이 피를 뿌렸을 게다. 진흥왕은 격전의 땅 외사에서 죽은 신라 영웅들을 위한 제사를 지낸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삼국사기 기록대로 팔관연회가 베풀어진 역사의 현장은 이곳 외사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외사리 절터에서는 통일신라 이전으로 시대를 올려볼 수 있는 와편이 다수 수습되고 있다. 외사리 창사의 시대적 연한을 진흥왕 시기로 올려 볼 수 있는 고와편(古瓦片)이 찾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절터에 대한 보다 확대된 연구가 시급하다.

괴산은 가장 청정하고 아름다운 계곡 화양구곡(華陽九谷)을 가진 고장이다. 화양동은 거유 우암 송시열선생의 의기와 유학사상이 담긴 곳이다. 대명의리로 상징되는 만동묘(萬東廟)가 있으며 곳곳에 충효를 대변하는 선비들의 유적이 즐비하다.

괴산의 대명사는 유기농으로 청결고추, 절임배추, 참기름은 이미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내년에 세계유기농엑스포를 열고 건강 백수시대 세계인들을 불러 농산물의 우수성을 자랑한다고 하는 것도 여기에 기반을 둔 것이다.

전국에서 제일 먼저 시행한 괴산 산막이 옛길에는 연간 1백 40만명이 다녀간다. 청정 힐링 로드로서 전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제 칠성면 외사리도 그 연원을 규명하여 천오백년 역사적 시공을 초월한 스토리 텔링을 만들었으면 한다. 국가 수호를 위해 장렬하고 애석하게 산화한 신라, 고구려 젊은 전사들의 얘기는 한국인과 외국인들에게도 큰 감동으로 와 닿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