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

우리민족의 외세에 대한 항전사 가운데 가장 훌륭하게 평가 될 전쟁이 있다.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였던 675AD 신라통일 직후 있었던 매초성((買肖城) 전투다. 이 전쟁은 세계전사에 남을 대 전쟁이며 우리민족에게는 대승의 역사로 기록된다.

당나라 측천무후는 신라 문무왕을 생포하여 당에 압송하라고 명령했다. 당은 귀화한 말갈 이근행 장군을 총사령관으로 삼아 평양에서 서라벌을 향해 남하한다. 당시 이근행이 지휘한 연합군대는 20만. 이근행은 사랑하는 부인까지 화려한 갑옷을 입혀 대동하고 의기양양하게 출진한 것이었다.

서라벌 왕궁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를 막지 못하면 문무왕은 반역한 죄로 끌려가 처단 될 것이며 고구려 백제 신라의 강토는 당의 파견 관리에 의해 지배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신라는 9군에 총동원령을 내려 과거 고구려군의 남하 루트인 매초성(買肖城.지금의 경기도 연천군) 지역을 지키기로 한다. 매초성 길목은 협곡으로 반드시 이 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신라의 동원령에 나선 9군의 병력 수는 약 3~4만대군(추정). 이 군대는 백제, 고구려 공벌당시 참전 경험이 많은 정예부대였다. 그런데 더욱 주목되는 것은 9군 안에 고구려당(幢), 백제당(幢)의 무리도 있었다는 점이다. 나라는 멸망했으나 민족의 멸망만큼은 막아야한다는 민족정신으로 뭉친 것이었다.

신라군은 매초성 인근에 육진(六陣)을 치고 적을 기다렸다. 이근행이 이끄는 연합군 20만명은 파죽지세로 남하하려 했다. 그 앞에 나선 5분지1 밖에 안 되는 보병위주의 신라군. 그러나 이근행이 깔보았던 신라군은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말갈 연합군과 신라군은 일대 조우한다. 그런데 전쟁 결과는 20만 말갈 연합 기병이 거의 궤멸되는 참패를 당했다.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신라군은 3만여 필의 말까지 생포하는 전과를 거둔 것이다.

왜 신라군 앞에 말갈연합군은 궤멸된 것일까. 20만 대병이라면 백제 원정 당시 소정방이 이끄는 13만 대군보다 7만 명이 많은 숫자다. 신라군은 이 매초성 전투에서 놀라운 과학병기를 동원, 탁월한 전술을 수행하여 대 전과를 올린 것이다.

제일 공을 세운 것은 신라 제일의 병기 노(弩)였다. 노는 파도처럼 진격해 오는 기병용이다. 노부대에서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수 천, 수 만발의 강력한 화살 앞에 선두 말갈군은 맥없이 무너졌던 것이다. 지하에 구덩이를 파고 나뭇가지로 엄폐해 있던 장창부대는 말갈의 선두 기병들이 달려오는 순간 장창을 높이 치켜들어 그 예봉을 꺾었다.

로마병정의 조직화 된 전술을 연상시키는 육진(六陣)은 적진 깊숙이 들어가 지리멸렬한 잔군(殘軍)을 도륙했다. 당나라의 육화진법(六花陣法)에서 전수 됐다는 육진병법은 신라의 독창적인 전술로 발전했던 모양이다. 육진이란 방진(方陣), 사진(蛇陣), 용진(龍陣), 원진(圓陣)등을 가리키며 신라본기 문무왕조에도 임금이 영묘사 앞에서 직접 열병했다는 기록이 보인다(..幸靈廟寺前路 閱兵 觀阿湌薛秀眞六陣兵法...). 말갈연합군이 참패하자 평양에 주둔했던 당나라 안동도호부는 만주 심양으로 물러났다.

이 전쟁에서의 승리 요인 중 가장 중요했던 것은 임전무퇴(臨戰無退)의 정신이었다. 신라군은 화랑도를 주축으로 낭당(郎幢)과 백전전승의 장창부대(長槍部隊)를 앞세워 결코 물러서지 않는 용맹을 발휘했다.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도 신라군은 절대 물러서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전해지는 한 고서에는 세계에서 가장 용감한 군대를 조선군(신라군)이라고 평했다는 기록이 있다. 가장 강하다는 노군(러시아)이나 해귀(黑人)보다 더 용감하다고 한 것이다.

며칠 전 경기도 연천군 대전리(大田里山城)를 지나며 말갈연합군과 신라가 조우했던 격전의 협곡을 지나가게 됐다. 역사의 현장을 지나치는 감회가 예전과 다르다. 아! 지금 이곳에 주둔한 국군의 사기는 어떤가. 임전무퇴, 신라의 후예들은 어떤 정신과 각오로 철책선을 지키고 있는가.

신임 한민구 국방장관은 시급히 신라화랑의 정신을 계승하는 기강 확립과 사기 진작에 힘을 기울여야한다. 군의 엄정한 기강과 사기야 말로 민족 보위의 가장 중요한 근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