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

과거 농촌에서 손님이 밥을 먹고 그냥 집을 나서면 주인이 불만을 터뜨린다. 밥을 대접받았으니 뒷간에 가서 변이라도 보태주고 가라는 것이었다. 변이 밭에 뿌리는 유용한 거름이었으니 이런 풍속도가 생겼음직하다.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필자는 똥 장군을 지고 밭에 나가 거름을 주는 부모를 따라 다닌 기억이 많다. 엄청난 악취에도 불구 묵묵히 인분을 유용한 비료로 정성스럽게 쓰던 부친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조선 선조 때 명의(名醫) 허준에 얽힌 재미난 일화 한 도막. 한 정승의 딸이 신혼 첫날밤을 치르다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 놀란 재상은 그 시간 마침 혜민서(惠民署)에 있던 허준을 납치하다시피 데리고 왔다. “어의는 네 딸을 살려주시오. 제발부탁이요”

허준은 방안을 살핀 후 이들 신랑신부가 사향(최음제)을 너무 많이 피워 향독(香毒)으로 실신했다는 것을 알았다. 허준은 하인들을 시켜 뒷간에서 인분을 퍼다 신혼 방 사방에 뿌리기 시작했다. 혼절하여 죽어가던 신랑신부는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민간에서는 인분주와 인분즙이 몸에 좋다고 이것을 먹는 기속(奇俗)이 있었다. 인분주란 아이 똥을 받아 술에 푹 담가 먹는 것이다. 헝겊 주머니에 과일을 넣어 발효 시킨 다음, 인분 액비 속에 집어넣고 다음날 빼내어 즙을 낸 것이 인분즙이다.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도 오줌을 약으로 썼다는 기록이 남아있지만 동양의 한방에서도 아주 유용한 약으로 사용됐다. 눈을 밝게 하고 피부를 곱게 하며 기침 해소를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오줌의 활용에 대해서는 조선 정조 때 우하영(禹夏永)이 쓴 ‘천일록(千一錄)’이란 저서에 등장한다.

“초겨울부터 정월 보름 사이에 모은 오줌은 가을 보리밭에 주고 정월부터는 오줌에 재를 섞어 뒤집으면서 햇볕을 쬔 뒤에 덧거름으로 쓴다. 한 해 동안 집안사람들의 오줌을 모두 모으면 백묘(百畝)의 논밭을 걸을 수 있다”

10세 전후 남아의 소변이 무병장수 비약(秘藥)으로 음용되기까지 했다. 현대에도 감기, 암, 당뇨, 뇌졸중, 비만, 심장병, 고혈압, 에이즈까지 고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녹십자는 1970년대부터 신선한 오줌을 원료로 한 뇌졸중 치료제 유로키나제를 생산, 판매해 오고 있다.

현대에 와서는 민간에서 똥을 발효하여 약으로 먹는 기속은 사라졌지만 이를 이용, 바이오 에너지를 만드는 자원재활용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하천 오염의 주범으로 알려진 축산분뇨가 가스를 생산하고 전기를 일으키는 시대가 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머지않아 환영을 받지 못했던 가축 분은 물론 죽은 폐사 돈이나 감귤껍질 까지 바이오 가스와 비료 원료로 각광받을 시대가 열리고 있다.

도시의 가정에서 배출되는 인분의 경우도 모두 하수처리장으로 흘러간다. 그런데 하수처리장에 모인 슬러지도 바이오가스를 만드는 재료가 되고 있다. 혐오스런 모든 것들이 귀중한 자원으로 각광을 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전국에서 매일 배출되는 음식물쓰레기 양은 1만5천톤. 이중 약1천톤이 바이오가스 생산 시설로 들어가 에너지를 생산한다. 그러나 한국의 바이오에너지 산업은 아직 초보단계여서 천문학적 재정투자에 비해 효과가 미흡한 형편이다.

최근 미래창조경제기획단이 코엑스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는 가축분뇨와 음식물쓰레기 자원화의 최고 성공 케이스로 평가받고 있는 이탈리아 바이오에너지 기술이 소개 됐다. 가장 첨단 기술로 유럽에서 가장 신인도를 받고 있는 회사는 아우스텝(Austep)이란 중소기업.

박대통령도 며칠 전 카이스트를 방문하는 자리에서 2020년까지 바이오에너지 산업을 집중 육성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시.군 자치단체의 특별한 관심과 용기가 중요하다고 하겠다. 악취나 음식물쓰레기를 더럽다고 무조건 혐오하는 주민들의 민원에만 전전긍긍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자원으로 확보경쟁을 벌이는 시대가 코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