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

자식을 많이 거느리는 것을 복으로 여긴 유교사회에서 포도화(葡萄畵)는 다산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양반가의 사랑을 받았다. 포도는 가지 하나에 주렁주렁 열매가 탐스럽게 열리기 때문이다. 포도를 그린 그림을 안방에 붙이면 자식이 많이 생산된다고 생각하여 민간에 수장(收藏) 풍속이 유행했다.

신사임당의 포도화 그림은 그윽하고 아름답다. 그녀의 포도화는 젊은 시절에 그렸지 않았을까. 사임당은 남편 이원수와의 사이에 4남3녀등 7명의 자식을 낳았다. 자녀 가운데 거유 율곡(栗谷)이 태어났다. 우암 송시열(宋時烈)은 사임당의 포도화를 감상하며 “천지의 기운이 응축된 힘으로 율곡 이이(李珥)를 낳았을 것”이라고 찬탄했다고 한다.

7명의 자식을 선호한 것은 민담 칠성대왕(七星大王)의 설화에도 등장하고 있다. 천상국에 사는 칠성대왕이 지하국에 내려온다. 칠성대왕은 매화부인에게 세 번 청혼하여 칠월칠석날을 택하여 혼인을 했다. 부부는 천지신명께 공을 들이는 한편 이웃들에게 좋은 일을 하여 공덕을 쌓는다. 드디어 부부는 염원하던 7명의 자식을 거느리게 됐다는 것.

명절이면 명산대천에는 자식을 점지해 달라는 염원행사가 벌어진다. 전국의 사찰에는 부녀자들이 구름처럼 몰렸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 음력 7월15일 백중절 사찰의 기복행사를 우란분회(盂蘭盆會)라고 했으며 부녀자들의 탈선이 적발되어 조정에서 일시 금지시키기 까지 했다는 기록이 있다.

대표적 고전 흥보전의 주인공 흥보는 자식이 스물다섯이나 됐다. 반면 악한 놀보는 무자식으로 그려진다. 선한 사람에게는 자식 복이 주어지면 악한사람에게는 자식복이 없다는 유교적 권선징악을 반영한 것이다.

신재효 판본 흥보가에 형제의 재미난 대화가 있다. 

(전략)"...어찌 그리 무복하여 밤낮으로 벌려 해도 돈 한 푼을 못 모으고, 원찮은 자식들은 아들이 스물다섯." 놀보가 뒤로 물러앉으며 군소리로, "박살할 놈 그 노릇을 해도 밤이면 대고 파니 다른 일 할 틈 있어야지. 계집년 생긴 것이 눈이 벌써 음녀거든." "식구가 이러하니 아무런들 할 수 있소 빌어도 많이 먹으니 다시는 빌 데 없고 굶은 지도 원 오래니 더 굶으면 죽겄으니..."(하략)

재미있게도 조혼이 유행하던 유교사회에서는 나이 찬 자녀를 혼사시키지 않으면 부모들이 관아에 끌려가 볼기를 맞았다. 사또는 부부에게 ‘음양(陰陽)의 도(道)에 역행했으니 하늘마저 원통히 여겨 비를 내리지 않는다’고 호통을 친다. 목민관은 혼기를 놓친 가난한 총각과 처녀가 조사되면 만사 제치고 우선 짝 지어주는 일을 주선하기도 했다.

전통적 다산 천국이었던 한국이 요즈음은 세계 최악의 저출산국으로 전락했다. 지난해 출산율은 1.19명으로 전년(1.3명)보다도 떨어졌다. 정부가 8년 동안 5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붓고도 초저출산의 딜레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상보육 등 양적 팽창에만 치중해온 저 출산 대책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높아만 가는 양육, 교육비등 젊은 부부들이 자녀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결혼 적령기의 남성과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이루면서 독신으로 살아가는 풍조도 한 요인이다. 그래서 요즈음 동네에서 어린아이들을 보기 힘들고 아이울음소리를 듣지 못한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여성인사는 한국의 저 출산율에 대해 “북한핵보다 더 무섭다”라고 경고한 적이 있다. 이 시대 출산율제고가 미래의 삭막하고 늙은 대한민국을 구하는 길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