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

조선 중기이후 정쟁을 일삼던 붕당의 결과는 너무 치명적이었다. 상대를 인정 않고 툭하면 투서하고 비방하며 음모하여 피비린내 나는 참극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들의 ‘빙탄불상용’식의 상쟁은 결국 근대화를 수용하는 걸림돌이 된다.

조선시대 유학의 거두 우암(尤庵) 송시열과 명재(明齋) 윤증의 예를 상기해 보자. 두 분은 모두 충청도인이며 율곡 이이-사계 김장생의 성리학 계보를 잇는 대표적 학자요 사제지간이었다. 그런데 두 인물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리어 상대에 승복 않는 자세를 보이며 갈등을 빚었다.

이들이 화합하지 못하자 시정의 선비들은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이런 용어로 두 거유를 빗대기도 했다. ‘빙탄불상용’이란 얼음과 숯불이 함께 섞이지 못한다는 한나라 동방삭의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숙종 대 박심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그는 윤증과 계보를 같이 하는 양명학자(陽明學者)로 실록에도 기록되는 인물이었다. 박심도 본래는 우암의 제자가 되길 바랐던 인물이었으나 후에는 명재와 양명학에 뜻을 두어 그의 편에 선다. 성품을 얘기한 대목을 보면 그가 얼마나 대쪽 같은 성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사람됨이 독실하여 만 사람이 막더라도 나아간다는 뜻을 지녔다. 비록 대인(大人)이라 할지라도 (잘못이 있으면) 조금도 용서하지 않았다.”(숙종실록)

이 기록의 대인은 바로 우암을 지칭한 것이 아니었을까. 박심은 몇 번이고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고집이 세어 시골에서 명재와 교우, 제자 양성에만 힘썼다. 그러나 만년에는 영천군수와 홍천현감등 지방 수령을 역임하기도 했다.

급기야 영, 정조는 탕평책이라는 처방으로 붕당의 폐해를 불식하려 했지만 그 유풍은 우리 정치사의 어둔 유산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상대의 약점을 발견하면 상소하고 몰락을 획책했다. 성리학에 반대되는 학문은 사문난적이라고 하여 매도하고 경세치용의 실학마저 타부시 함으로써 조선의 근대화를 막는 결과를 낳았다.

실학의 거두 다산(茶山) 정약용은 당시 선비들의 편협성을 꼬집었다. 그는 ‘죽난시사(竹欄詩社)’라는 동인을 결성하면서 폭 넓은 교제가 없는 고루한 선비들이 많은 세태를 개탄했다.

“세대를 같이 산다는 것과 한 나라에 같이 산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연분이 있는 것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과 거주의 원근으로 인하여 즐거움은 적고 서로 알지 못하고 지내는 것이 인생사다. 우리 인간은 사람마다 곤궁과 현달(顯達)이 각각 다르고 취향이 같지 않으면 비록 나이가 같고 이웃에 산다 하여도 같이 놀며 즐겁게 놀지 않는 편협성이 있다. 그래서 인생의 교결(交結)이 넓지 못하기 때문에 시사를 결성했노라”(竹欄詩社帖序)

지금 대한민국의 시계는 어떤가. 환율은 곤두박질치며 경제는 침체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외교적으로도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있는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다. 특히 내적으로는 세월호 참사이후 공석중인 국무총리와 개각을 싸고 나라는 보수 진보의 대립으로 혼란에 빠져 있다. 지금 붕당의 폐해가 가장 극심했던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착각마저 든다.

문창극총리 후보지명자의 교회강연과 일부 칼럼을 가지고 자격 시비가 일며 지성인들이 두 편으로 갈리고 말았다. 지금 어떤 선택이 과연 나라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길일까. 과거 언론인으로 정치적 사안을 비판한 글을 상기하여 폄하하고 공적으로 모는 정치 자세는 대의가 아니며 민주주의의 가장 소중한 언론자유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그가 과연 재상의 덕목이 있는 지는 청문회를 통해 더욱 심도 있게 가려야 할 것이다.

시대의 편협성을 지적하여 지식인들의 교결(交結)을 주장한 다산의 ‘죽란시사’ 고사를 여야 모두가 한번 쯤 음미해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