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필 추사(秋史) 김정희는 고운(孤雲) 최치원을 평생 흠모했다. 고운의 불교 사상과 높은 학문, 세상사에 초연하며 풍류를 즐긴 자유로움을 사랑한 때문이다. 추사는 고운의 무심론(無心論)을 그의 시작 노트에 기록하며 명시로 회자되는 ‘추야우중(秋夜雨中)’이란 시를 음미하곤 했다.

가을바람 속 괴로운 시만 읊노라(秋風惟苦吟)/ 이 세상에 날 알아주는 이 적네(世路少知音)/ 창문 밖에는 밤 비가 내리고(窓外三更雨)/ 등잔 앞에서 만리 밖 고향을 생각하네(燈前萬里心)

이 시는 고운이 당나라 유학 시절 당시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머나 먼 중국에서 고향 서라벌을 그리는 마음을 적은 것이다. 추사가 이 시를 즐겨 읽은 것은 많은 세월을 귀양지에서 보낸 자신의 처지가 먼 이역에서 망향병을 앓은 고운과 닮은 때문이었다.

최치원은 1천2백년전 고대 한류의 원조였다. 그는 젊은 나이에 당나라에 유학, 과거에 합격하고 관리가 되었다.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써 난을 진압하는 결정적 동기를 이루었고 당대 중국 지식인들을 감동시켰다.

당시 시정에서는 ‘난군을 진압한 것이 군사력이 아니라 최치원의 글이다.’라는 유행어가 나돌 정도였다고 한다. 난이 평정된 후 희종(僖宗)은 최치원에게 자금어대를 하사한다. 자금어대는 황제가 정5품 이상에게만 하사하는 붉은 주머니. 고운의 격문은 천 수백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역사 문학을 전공하는 중국 전문가들을 감탄시키고 있다.

고운은 당에서 귀국 후 처음에는 부성(富城)태수로 임명된다. 부성은 지금의 서산시 대산면 바닷가에 있는 ‘부성’이며 여기는 신라시대 당나라로 통하는 항구였다. 여기서 고운은 관리들의 출입국과 교역을 담당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운은 뛰어난 인물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신분제 벽에 가로막혀 뜻을 펼치지 못했다. 6두품 이상은 아찬이상의 벼슬을 하지 못하는 제약 때문이었다. 고운은 ‘외로운 구름’이라는 아호처럼 난세를 피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풍류로 생을 마감한다. 전국의 명산, 고찰에 고운의 설화가 많은 것을 보면 그의 유랑 벽을 짐작할 것 같다.

최근 고운과 연관이 있는 신라 때 사찰 미탄사(味呑寺)터가 발견되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미탄사와 최치원의 독서당 위치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최치원은 본피부 사람이다. 지금 황룡사 남쪽에 있는 미탄사의 남쪽에 옛 터가 있다. 이것이 최후(崔侯, 최치원을 지칭함)의 옛집이 분명하다.(致逺乃夲彼部人也今黃龍寺南味呑寺南有古墟云是崔侯古宅也殆明矣)”

이 기록을 토대로 연구기관이 절터를 발굴하여 ‘미탄(味呑)’이라고 쓰여진 명문(銘文)기와를 찾음으로써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미탄사는 황룡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고운의 집도 왕궁에서 가까운 거리에 자리 잡았음을 알려준다.

유적에서 찾아지는 한쪽의 명문기와 파편이 주는 성과는 이처럼 대단하다. 충주시 주덕면 속칭 숭선이 절터에서 숭선사(崇善寺)명 기와 조각이 찾아져 이 절터가 고려 초 신명왕후 유씨(神明王后 劉氏)의 명복을 빌던 왕찰 숭선사터로 밝혀진 적이 있다. 청주상당산성 공남문 아래서는 신라 사탁부명(沙琢部銘) 기와가 찾아져 통일신라 신문왕대 6부의 호족이 경주에서 옮겨와 살았다는 삼국사기 기록을 증명하기도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해 박근혜대통령의 방중 때 환영사에서 그들이 존경해 온 고운의 시 ‘범해(泛海. 바다에 배 띄우다)’ 앞부분을 인용했다. 한국과 중국의 유구한 역사적 교류를 이 시로 비유한 것이었다.

올 여름 시진핑 주석의 역사적 방한을 앞두고 미탄사 터가 발견됨으로써 고운의 집터를 찾은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