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멋지고 풍성한 점심(lunch)을 먹는 이들은 누구일까.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프랑스 파리 사람들은 가장 긴 점심식사를 갖는다. 이들의 즐거운 크리스마스 점심 식사는 보통 4~5시간이나 소요된다고 한다.

미국 최고 여론조사기관인 해리스 인터렉티브(Harris Poll)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의 90%는 ‘밥을 먹는 행위야 말로 소중한 기쁨’이라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끼 식사에 걸리는 평균 시간은 약 한 시간 반. 응답자의 78%는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을 나눌 수 있는 곳은 식탁이다.’라고 대답했다. 프랑스인들의 고상한 멋을 배우는 이탈리아인과 인도인들도 요즈음은 점심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시간이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점심(點心)’이란 용어는 선가(禪家)에서 나왔다. 이 말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 덕산선감(德山宣鑑)의 일화에 근거를 둔다. 스님은 속성이 주(周)씨로 금강경에 능통했는데 세상에서 그를 ‘주금강(周金剛)이라고 불렸다. 길을 가다가 허기가 졌는데 마침 떡을 파는 노파를 만난다.

스님은 노파에게 배가 고프니 떡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노파는 스님에게 묻는 말에 대답하면 떡을 주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안주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스님의 봇짐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고 물었다. 스님은 ‘금강경’이 들어 있다고 대답했다. 노파는 또 질문했다.

“금강경에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라고 하는 부처님 말씀이 나오는데 스님은 어느 마음에 점심(點心)을 하시려고 하십니까?”

노파의 질문에 스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과거, 현재, 미래 어디에도 마음을 정할 수 없었던 것인가. 이로부터 점심은 ‘마음에 점을 하나 찍는 것’처럼 아주 간단함을 지칭한 것으로 통용됐다고 한다.
 
중국 당나라 풍속에도 ‘점심’이란 용어가 등장한다. 칠수유고(七修類稿)라는 책은 명나라 시대 낭영(郎瑛)이 쓴 글. 이 책에 ‘조반 먹기 전에 가볍게 먹는 음식을 점심이라’고 나온다. 당나라시대 한 관리 부인이 "아직 아침밥을 먹을 때가 되지 않았으니 우선 ‘점심’을 먹자"라는 말을 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6백여년 전 조선전기 기록을 보면 일상 식생활 속에서 점심이 통용됐음을 알려 주고 있다. 태종 6년(1406AD) 심한 가뭄이 계속되자 임금은 백성들의 부역을 면해주고 ‘각 관아에서 점심을 폐하라’고 전지를 내린다. 그러나 18세기 후반 정조 때 실학자 이덕무(李德懋)의 앙엽기(鴦葉記)에 보면 ‘조석 2식(朝夕二食)으로 한 끼 5홉씩 하루 한 되를 먹는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보면 관리가 아닌 서민들 사이에는 점심을 건너뛰고 하루 두 끼 식사가 통용되었던 것 같다.

조선시대 임금의 점심 수라를 ‘낮것상’이라고 불렀다. 낮것상은 미음이나 죽 혹은 간단한 요리로 만들어 진어(進御) 한다. 요즈음 한류로 외국에도 소개 되고 있는 비빔밥도 낮것상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햄버거 하나로 점심을 때우는 바쁜 미국사회에서 최고로 비싸고 오래먹는 점심식사 경매가 열려 세계적 이목을 끌고 있다. 미국의 5대 부자로 꼽히는 워런 버핏이 매년 진행하는 e베이 점심식사 자선 경매가 올해도 한화 22억1천여만원에 낙찰 된 것이다. 버핏은 그동안 자선경매로 얻어지는 수익금 1백50억원을 자선단체에 기부한바 있다.

버핏과의 점심은 프랑스인들보다도 더 장시간인 7시간이나 소요된다. 식사를 하는 동안 낙찰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투자 철학, 자선과 상속에 대한 훌륭한 토킹이 준비 된다. 간단한 점심이 아니라 진지한 부자학습 토론회와 같은 인상이다.

응찰자는 막대한 돈을 들여 세계 최고의 부자와 점심을 하면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일까. 성공학에서는 ‘부자가 되기 위해선 부자를 카피(copy)하라’는 지침이 있다. 최고로 성공을 거둔 부자의 지혜를 배우고 기부문화를 즐기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미국 리치맨들의 멋진 여유를 엿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