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세계문학상 공동수상작인 이동원 작가의 장편소설 '살고 싶다'가 출간됐다.

한·일월드컵과 16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지난 2002년, 탄약고 야간 근무를 서고 있던 주인공 이필립 상병 앞에 의문의 남자가 나타나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남은 군 생활을 편히 지내게 해주겠다고 한다.

그 제안이란 그와 같은 시기에 국군광주통합병원에 입원했던 한 친구의 자살 사건을 조사하라는 것.

이등병 시절 유격 훈련을 받다 오른쪽 무릎을 다친 주인공은 자대와 군 병원을 오가며 생활하느라 진급조차 제때 못 했고, 탄약고 야간 근무를 말뚝으로 서며 얼마 남지 않은 군 생활을 버티고 있었다.

탄약고의 겨울은 끔찍했지만 지난 세월에 비하면 견딜 만했다.

든든한 동기들 덕분에 이젠 건드리는 놈도, 무시하는 놈도 없었다.

조금 더 편히 지내겠다고 수상쩍은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었지만, 그는 남자의 손을 잡았다.

자대에서는 무능력자에 부적응자지만 군 병원 일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었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쓸모 있는 인간임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상병은 한 친구의 죽음 뒤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는지 조사한다.

하지만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연쇄적인 자살 사건이 벌어지고, 그것이 그 친구가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과 연결돼 있음이 서서히 드러난다.

늘 미지근했던, 그래서 죽은 전우들과 살아남은 전우들 사이에서 웃지도 울지도 못했던 그는 겨울과 봄 사이에 마침내 진실과 마주한다.

이 소설에서 독자들은 '살고 싶다'라는 조용한 외침을 두 번 듣는다.

한 번은 소설 속 주인공 이필립이 혼잣말을 할 때고, 다른 한 번은 자살한 친구 정선한의 일기장에서다.

책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는 두 사람은 계급도 같고 두 번이나 비슷한 시기에 국군광주통합병원에 입원하는 등 자대에서 비슷한 모욕과 고통을 겪으며 지냈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주인공 이필립은 매사에 냉정하고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는 반면 정선한은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볼 줄 알고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한다.

그런 두 사람이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스스로 삶을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한 사람은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 중간에 생각을 바꿨고 한 사람은 '살고 싶다'라는 짧은 문장을 적어놓고 스스로 목을 매는데…

이 책은 위계가 철저한 사회인 군대에서 사람들이 악행과 폭력에 길들여지고 익숙해지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주인공 스스로도 내면의 괴물과 만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군대라는 폐쇄된 조직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과 마주한 이 상병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308쪽.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