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과 달라진 게 많기도 하지만 /진화가 빨라 어떤 땐 /휘둘린 세파를 탓하기도 하지만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다를 수 없습니다. /‘친구같은 선생님, 선생님 닮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며 /칠판 빼곡한 이야기들 /오월 꽃술로 자리합니다. 당신의 혼(魂)아녔음 이름없는 양치기였을텐 데 / 신음 한 번 못한 아픔 속에도 /스스로 낮춘 눈빛으로 하나를 더 가르치려 높이던 목청 /자주 터지고 깨진 아이일수록 /학용품 몇 점 사서 슬그머니 가방에 넣어 준 손길 /당신은 또 다른 부모입니다. /어디에 서 있는지 또, 어떤 걸음으로 분주해 하는지 /어둔 밤 지나야 새벽 오듯 /사도의 행보마다 스케치 해온 편린들 /백년 새살로 키웁니다. /그림자는 밟혀도 아니, 실체가 모두 밟힌다해도 /당신이 웃어야 교실 속 아이들 꽃되어 핍니다./ 필자의 시 ‘그림자는 밟혀도’ 전문이다. 아이들과 선생님 웃음을 마주한지 오래다. 갈수록 냉랭하다. 아이를 낳았다고 모두 엄마가 되는 건 아니듯, 아이를 사람답게 만들어야 비로소 스승의 타이틀을 얻는다.

◇무한정 자산

봉사활동 중, 부주의로 병조각에 찔리는 바람에 보건선생님의 간단한 응급치료를 받게 한 후 집으로 돌려보낸 일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등굣 길 아이들을 헤집고 허겁지겁 교실 문을 열더니 “학교에 공부하러 보냈지 누가 그런 일 따위를 하라 보냈느냐 책임져라”며 대뜸, 학부모님 삿대질이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게 박혀 있다는 교직 후배 이야기가 무겁게 내려앉는다. 부모 입장에선 몸으로 낳은 소중한 자식이라면 교사야말로 미래를 담아주는 똑같은 자식이요 제자인데 말이다.

멀게만 느껴지는 교육현장의 고달픈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아 씁쓸한 여운을 떨치지 못한다. 어찌 교실 안에서의 교과진도만을 두고 교육으로 편애할까? 세상은 누구나 이웃과 더불어 땀 흘리며 살아간다. 공동체와 함께 먼 훗날 펼칠 사회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경쟁할 어린이들이 흘린 한 방울 땀은 성인으로 자란 뒤 얼마나 굴곡진 근육일지 예측 불가의 엄청난 자산이다.

햇병아리 교사시절 지지리도 점수를 역행하는 반 아이가 있었다. 그래도 언제나 뚝심으로 궂은 일에 앞장섰고 단체생활의 비타민이 되곤했다. ‘이 다음 사회에서 큰 일을 하게 될 거야. 사회는 너 같은 사람을 필요료 해…’선명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충 그런 쪽으로 잦은 격려를 해 준 것 같다. 주례를 맡아 웨딩의 전당에 섰을 때 감회는 남달랐다. 제자는 ‘언제나 용기를 준 은사님 말씀’이었다며 나를 위로했다. 정말 변해도 너무 변한 제자 앞에서 말 한마디의 힘을 검증받은 게 아닌가? 우리는 흔히, 스치듯 하신 선생님 말씀으로 잠재해 있던 위력을 끌어내어 성공 묘약이 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가슴에 대못박은 상처로 남아 평생동안 치유 못할 상처로 남는 사례를 숱하게 듣는다.

요즘 교육현장을 두고 ‘꺾일대로 꺾인 교권’으로 한탄한다. 날이 갈수록 공교육이라는 엄청난 굴레의 두려움을 어쩌랴. 합창에서 하모니처럼 어린이는 선생님의 손길로 자란다. 비록, 교실이 조금 소란하면 어떤가?

‘입 다물어!’ 종일, 입을 닫고 옴짝달싹 않는 마네킹으로 길들여 놓곤 발표력을 닦달하는 건 아닌지? ‘한국 학생들은 미래엔 필요하지 않고 존재하지도 않을 지식과 직업에 하루 12시간 낭비하고 있다’는 앨빈토플러의 실질적인 접근은 이런저런 이유와 여건 상 미흡하다. 국가의 비전을 교육에 올인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100년 새살의 위대함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