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250년 전 자금성에 향비(香妃)라는 황제의 후궁이 있었다. 향비는 위그루 투르판에 살던 아름다운 여인으로 전쟁 포로가 되어 청(淸) 건륭황제에 바쳐진 여인이다. 그녀는 카슈카르의 한 족장 부인이었다는 설도 있고 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강제로 끌려왔다고도 전해진다.

이국적인 미모의 22세 향비를 만난 건륭제는 마음을 뺏겼다. 황제는 자금성 안에 이슬람식 궁궐을 지어 향비가 거처하도록 했다. 그러나 향비는 고향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겨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그때 황제는 신장 지역에서 나오는 재료를 진상 받아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향비는 몸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고 한다. 그런데 향비의 기록을 보면 매우 비극적이다. 그녀는 건륭제가 여러 번 침실로 불렀으나 은장도로 저항하며 몸을 허락 안하고 결국은 자살했다는 것이다.

건륭제는 이탈리아 선교사를 불러 여러 점의 향비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냉랭한 향비를 향한 건륭제의 짝사랑은 지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끝내 건륭제는 지금의 차가운 위그루인들의 마음처럼 향비의 가슴을 열지 못했다.

건륭제는 청나라 역사상 가장 화려한 문화 융성기를 주도한 다재다능한 황제였다. 이 시기 중국도자기 예술은 최고조로 발달한다. 황제는 역사에도 관심이 커 한림원 정통 학자들에게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라는 역사를 편찬케 하여 자신의 선대가 신라 왕실이라는 점을 은연중에 인정하기도 했다.

향비는 무덤이 두 개나 된다고 한다. 하나는 후궁의 장례 절차에 따라 건륭제의 능침 안에 묻혀있다는 것이고 하나는 고향 카슈카르에 가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향에서는 건륭제의 후궁이 되었다고 하여 배신이라는 낙인이 찍혀 대접을 못 받고 있다.

‘위그루’는 어떤 나라이며 우리와는 어떤 역사적 관계가 있을까. 중국어로는 ‘웨이우얼(維吾爾)’이라고 표기하며 고대 중국 사서에는 2천년 이전부터 흉노, 돌궐등 다양한 명칭으로 명멸했다.

흉노의 일부 귀족들이 남쪽으로 내려와 신라의 지배자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문무왕은 자신이 먼 옛날 흉노의 후예라는 것을 비문에 기술하기도 했다. 경주 신라왕들의 고분에서 출토된 장식유물은 이 지역에서 출토된 지배자들이 사용했던 유물과 닮았다.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기마인물토기(국보91호)의 주인공 얼굴이 지닌 특징은 바로 이들과 흡사하다. 약간 굽은 오뚝한 콧날은 서양인에 가까운 것이다.

6세기 중반 고구려는 돌궐(위그루)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는데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된다.

‘9월에 돌궐이 쳐들어와 신성을 포위했지만 이기지 못하였다. (군세를) 옮겨 백암성을 공격하니 왕은... 과연 그로부터 4년 후인 551년에 북방의 돌궐이 쳐들어와 신성과 백암성을 각각 공격했다....’

위그루는 8세기 초반, 동부 돌궐을 통합, 강한 국가가 되었으나 얼마안가 키르기즈에게 멸망했다. 그러나 둔황, 투르판 등지에 왕국을 세워 실크로드로 통하는 화려하고 수준 높은 문화를 마련했다.

모래바람이 엄습해 오는 투르판 언덕에 흙으로 성을 쌓고 끈질기게 살아왔으나 군사력은 예전 같지 못했다. 위그루는 주변국들과 대항하다 1759년 청나라 건륭황제에 의해 복속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지금 중국 대륙이 위그루 신장지구 문제로 긴장하고 있다.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위그루인들의 저항으로 얼마 전 시진핑 주석의 시찰 즈음에도 폭탄테러가 발생, 중국을 긴장시켰다. 중국정부도 위그루의 독립을 허용 못할 처지다. 위그루를 독립시켰을 경우 소수민족의 독립요구가 봇물처럼 터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석유 천연가스등 에너지 자원의 보고를 쉽게 내놓을 수 없는 형편이다.

향비의 비극적 사연을 담은 2천년 위그루의 역사. 조국을 잃고 유전하며 독립을 외치는 이들을 보면 나라 없는 슬픔이 얼마나 뼈저린가를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