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격(國格)이란 말은 한 나라의 정부나 시민들이 갖추어야 할 예의들을 이르는 말이다. 국격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는 나라의 기강이다. 기강이 서 있는 나라는 국격이 높은 나라이고 기강이 무너진 나라는 국격을 논할 자격도 없다.

70~80년 독재정권 시절 가끔 이 단어가 보통명사로 쓰이다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정운찬 총리가 연설이나 언론 등에서 국격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다시 유행을 했다. 과연 우리에게 국격은 존재하는가. 국민 안전은 말뿐이었나. 열흘째를 맞은 세월호 참사가 희생자 가족은 물론 온 국민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있다. 국가는 무엇인가, 정부는 도대체 왜 존재하는 것인가. 정부의 국민안전 구호는 불법과 부실, 무능의 세월호와 함께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에 갇혀 버렸다.

세월호 침몰로 한국의 국격은 추락하고 있다.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불투명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한국의 기업 문화도 세월호 참사의 원인으로 꼽았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 영문판도 사설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는 한국의 현대화 수준을 묻는 시험"이라고 전했다. 환구시보는 "한국의 이번 재난은 후발 현대화의 한계와 취약성을 보여준 사례다. 현대화는 인간의 생명 보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중국보다 우리가 낫다고 자만하던 한국으로서는 뼈아픈 지적이다.

지난 20일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혼자 살기에 급급해 승객 수백 명과 배를 버리고 먼저 탈출한 세월호 이준석 선장에 대해 '승무원들의 치욕' '악마'와 같은 표현으로 비난했다. 이 신문은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이후 선장은 배와 운명을 같이한다는 자랑스러운 전통이 승무원들 사이에 이어져 왔다. 2012년 이탈리아 크루즈선 '코스타 콩코르디아'를 버리고 탈출한 프란체스코 스케티노 선장에 이어 이준석 선장이 두 번째로 타이타닉의 전통을 파괴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이번 사고에 대해 "승무원들의 치욕"이라고 표현하며 인터넷 블로거들 사이에 '세월호의 악마'로 불린다는 소식도 전했다.

세월호 참사는 나라기강이 무너진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보여주었다. 반면, 1514명의 희생자를 낸 타이타닉호 침몰의 경우는 달랐다. 역시 대형사고이긴 했으나, 선장이 사고수습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기강이 살아 있는 영국의 모습을 보여줬다.

타이타닉호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는 사고 당시 마지막 순간까지 승객탈출을 지휘했고 타이타닉호와 운명을 같이 했다. 사람들은 그의 숭고한 직업의식과 책임감을 높이 평가했다. 그의 고향 사람들은 영국 리치필드에 스미스 선장의 동상을 세우고 "영국인답게 행동하라(Be British)"는 그의 말을 새겼다.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가.

세월호 선장 이준석씨(69)는 승객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제일 먼저 탈출행렬에 합류했다. 이 씨는 최초 선박좌초가 접수된 지 30분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다가 40여 분 뒤 해경 경비정에 의해 구조됐다고 한다. 선장과 선원들 상당수가 책임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했다는 것에 국민들은 개탄하고 있다. 타이타닉호의 경우와 너무 대조적이다.

이번 참사는 '신뢰'에 큰 타격… 어른이라는 게 부끄럽다

선박의 선장은 안전을 책임지는 최고책임자이다. 유사시 선장은 자신의 선박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한다. 그것은 선장의 직업윤리이자 명예이다. 이번 세월호 침몰로 국격 또한 침몰했다. 외신들이 한국 사회 신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박근혜정부들어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안전'을 제일 우선시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번 수습과정을 보면서 안전은 온데간데 없고 우와좌왕만 했다. 나아가 정부에 대한 신뢰 또한 큰 타격을 받았다. 또 이번 세월호 참사는 공동체간의 '신뢰'에 큰 상처를 줬다. 아이들은 어른말만 믿고 따른 게 큰 화를 자초했다. 어른이라는 게 부끄럽다. 한국인라는 게 부끄럽다. 이제부터라도 국격을 논해야 한다. 하지만 국격은 하루아침에 업그레이드 되지 않는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