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군 임천면에 백제 때 고성인 가림성(加林城·제4호)이 있다. 가림성은 성흥산성으로도 불리며 백제기록에 축조사실이 남아있는 유일한 유적이다.(삼국사기 백제본기 동성왕 23년조(501AD). 가림성은 백제 공주기 부터 멸망 후 복국운동시기 까지 6~7세기 역사의 주 무대였으며 역사학계에서 매우 주요한 유적으로 평가 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천 5백년 전 가림성은 왜 백제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것일까. 가림성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강 위례성에서 개로왕이 장수왕에게 사로잡혀 죽음을 당한 후 웅천으로 천도한 아들 문주왕은 황망함 속에서도 사직을 추스린다. 당시 웅천이나 인근의 제성은 거의 마한(馬韓) 세력이었으나 이들은 백제왕조에게 매우 친화적이었다.

그 후 문주왕이 승하하고 일본에서 귀국하여 즉위한 아들 동성왕(東城王)은 영웅 풍모가 있었다. 술을 좋아하여 신하들에게 연회 베푸는 것을 즐겼으며 사냥을 좋아했다. 궁성 안에서는 매일 밤 노래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동성왕은 고구려 세력의 남하를 걱정하여 신라와 동맹을 꾀한다. 그리고 신라왕에게 사위가 될 것을 청했다. 이때 청혼을 받은 진흥왕은 경주 사량부에 살던 아찬 비지의 딸을 시집보냈다. 비지는 신라왕족으로 진흥왕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으며 역사는 이를 혼인동맹이라 기록하고 있다.

동성왕은 풍전등화에 놓인 백제의 명운을 다시 회복시켰다. 백제 마한 가야국등 여러 나라도 예전처럼 백제를 종주로 삼아 동맹한다. 한강 위례성 시대의 강력한 국위를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동성왕은 자주 왕도 부여에서 먼 곳까지 말을 달려가 사냥을 즐겼다. 12월 어느 날 왕은 눈보라 속에서 사냥을 하다 부여 가림성 인근 마포촌(馬浦村)에서 유숙하게 된다. 이때 가림성주 백가(苩可)가 왕을 수행했던 것 같다. 백가는 왕족의 일원으로 보이며 왕명에 의해 가림성주로 임명을 받은 직후였다.

그런데 여기서 백가는 동성왕을 시해했다. 백가는 왜 동성왕을 시해한 것일까. 자신을 변방인 가림성주로 보낸데 대한 적개심의 표시였을까 아니면 민생은 챙기지 않고 주연과 사냥만을 일삼는 동성왕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된 것인가. 백가는 동성왕을 시해하고 왕도 웅천에 반기를 든다.

이때 무령왕은 일본에 있었다. 무령왕에 대해선 문주왕의 아들이라는 설과 동성왕의 아들 혹은 동생이란 설도 있다. 무령왕은 동성왕의 시해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하며 우두성(牛頭城)이라는 곳에 진을 치고 가림성의 백가와 대응한 것이다.

그러면 우두성은 어디일까. 학계 일부에서는 우두성을 지금의 강원도 춘천(春川)으로 비정한바 있다. 춘천은 고구려의 우수주(牛首州)로 백제의 우두성과 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과연 춘천이 백제 우두성일까.

무령왕은 웅천(熊川) 왕도군을 이끌고 부여 임천 가림성을 공격한다. 이때 일본에서도 많은 수의 군사들이 우두성에서 왕의 가림성 토벌을 지원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결국 반역자 백가는 무령왕의 토벌군에 사로잡혀 백강에 던져지고 난은 종지부를 찍었다.

우두성은 바로 서천 한산(韓山)의 건지산성(乾芝山城)으로 이를 입증하는 것은 동국여지승람 한산군의 기록이다. 이 기록에는 재미있게도 건지산성을 백제의 우두성이라고 표기한 것이다. 우두성은 바로 왕성이란 뜻이며 ‘건지’라는 이름과 같은 뜻이다. 삼국사기에 보면 백제인들은 자신들의 왕을 지칭할 때 ‘건지’ ‘견길지’라고 했다.

그런데 백제 멸망 후 3년간 건지산성과 가림성 등 백강의 주요한 성들은 모두 복국(復國)의 기치를 들던 곳이었다. 이곳에서 수만명의 이름 없는 백제-일본 연합 전사들이 처절하게 싸우다 순국했다. 얼마 전 부여 임천 가림성에서 처음으로 백제복국운동 당시 싸우다 산화한 무명전사들의 위령제가 열렸다. 조국의 복국을 위해 처절하게 싸웠던 백제전사들의 고혼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비라도 세웠으면 하는 마음에서 상고해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