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라일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인가?

광해는 어느 날 과거시험장에 나와 이 같은 책문(策問)을 냈다. 책문이란 관리로 나갈 응시자들에게 시무책(時務策)을 물어 자질과 덕목을 가리는 제도다. 그때 응시자중 임숙영(任叔英)이란 사람이 다음과 같은 답을 썼다.

“임금의 잘못이 국가의 병입니다. 전하께서는 자기수양에 깊은 뜻을 두시되 자만(自慢)을 심각하게 경계하여 두소서. 삼가죽음을 무릅쓰고 대답합니다.”

당시 시험관은 당대 최고 지식인 일송(一松) 심희수(沈喜壽). 일송은 당돌한 임숙영의 글을 탁월한 답이라고 평가하여 급제시켰다. 그러나 광해군이 급제자의 글을 보는 과정에서 임숙영의 답을 보고는 버럭 화를 내고 급제 취소를 엄명한다.

조정은 몇 달간 이 글로 시끄러웠다. 그런데 판서 이항복(李恒福)이 적극 임숙영을 옹호하여 다시 급제자로 환원되었다. ‘모름지기 젊은 관리로서 의기가 있다면 임금의 면전이라도 용기 있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래 ‘책문’의 역사는 한(漢) 무제(武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방수령들의 추천으로 중앙에 올라온 인재들에게 시무감각을 물은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이 책문을 잘 활용한 조선임금은 정조(正祖). 전문가의 한 논문을 보면 정조의 여러 책문 속에는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했던 애민사상이 담겨 있다고 한다. ‘임금은 백성을 위한 존재이며 백성을 하늘처럼 여겨야 한다’는 것이 왕의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정조는 지방에 암행어사를 수시로 보내 현장정치를 시행한다. 수령들이 실제로 애민사상을 가지고 정치를 하고 있는지 관찰하고 감독한 것이다. 그리고는 어사들의 암행평가서를 토대로 수령들의 승진자료로 삼았다.

정조 18년(1794AD) 11월 16일 정약용(丁若鏞)등 세 명의 젊은 어사가 동시에 전국 암행을 다녀온 후 복명한 기록이 왕조실록에 있다. 그들이 올린 서계(書啓)에는 똑같이 한 명의 수령 이름이 올라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고양 군수(高陽郡守) 왕도상(王道常). 당시 이조판서 이치중(李致中)은 임금에게 다음과 같이 건의한다.

"고양 군수 왕도상은 세 어사의 보고가 모두 선량하다고 칭찬하였으므로 승진시켜 서용 하소서"

정조는 이판서의 진언을 받아들여 고양군수 왕도상의 관작을 올려주었고 선정을 크게 치하했다고 한다.
목민관이 어떤 일을 잘해야 진정 백성을 사랑하는 것일까. 정약용은 ‘목민심서’에 백성 사랑의 여섯 가지 조목을 열거해 놓았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애민육조(愛民六條)’. 이는 다산이 여러 고을 암행어사를 다니며 얻은 경험에서 나온 것일 게다.

애민육조는 지방 수령들이 반드시 살펴야 할 요목으로 현대의 지방자치단체장들에게도 빼 놓을 수 없는 사항이다. 1.양로(養老) 2.자유(慈幼) 3.진궁(振窮) 4.애상(哀喪) 5.관질(寬疾) 6.구재(救災)이며 ‘힘없고 약하며, 가난하고 천하며, 병들고 재난에 허덕이는 불쌍한 백성들에게 애정을 베풀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지하단칸방에서 어렵게 살던 가난한 세 모녀가 마지막 월세 70만원을 남기고 자살한데 이어 또 울산에서는 국민기초생활수급 지원을 받던 50대 어머니와 20대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세계 10위권이라고 자랑하는 경제대국 뒤 안에 숨겨진 가난한 이들의 비극이 그치지 않고 있다. 대통령도 복지혜택을 얻지 못하는 가난한 가정의 보살핌을 내각에 특별히 강조했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에서는 출마자들의 윤곽이 나타나면서 선거열풍이 불고 있다. 언론들은 후보들에게 애민(愛民)에 대한 책문(策問)을 한번 시도해 보면 어떨까. 중산층이 몰락되고 빈부격차가 심각한 이 시대, 그늘진 곳을 잘 살펴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탁견을 내놓는 후보들에게 후한 점수를 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