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때 저공과 원숭이 얘기다. 앞으로 먹이를 줄이고자 하나 여러 원숭이가 앞으로 말을 잘 듣지 않을 것을 두려워 해, 먼저 이를 속이어 말하기를 “너희들에게 먹이를 주되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 네 개를 주겠으니 좋으냐?”하니 여러 원숭이가 다 일어나서 화를 내거늘 바로 말하기를 “너희들에게 먹이를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주겠으니 좋으냐?”하니 여러 원숭이가 다 엎드려 절하고 기뻐했다. 이는 조삼모사(朝三暮四)로 간사스러운 꾀로 남을 속여 희롱함을 이르는 말이다.

정공천제 폐지는 2012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박근혜, 문재인 후보가 국민들에게 폐지 약속을 했고, 대선이 끝난 후에도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약속 이행을 확인했다. 소속 국회의원의 80%가 기초단체장 공천제 유지를 바라고 있지만 국민의 70%는 폐지를 바라고 있다.

사실 정당공체제 폐지는 유권자를 을에서 갑으로 환원하는 제도다. 공천권을 정당이 아닌 국민에게 주자는 취지다. 하지만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대선 공약을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선거에서 공약을 했다고 해서 현실에 무리가 있어 보이는 걸 그대로 지키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새누리당에서 기초공천 폐지도 지키려고 생각을 해봤지만 위헌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아무리 정치권이 감언이설로 ‘꼼수’를 써도 국민은 속내를 훤히 안다.

2009년 10월 23일 국회에서 당시 박근혜 의원은 세종시 축소 의견을 낸 이명박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정치는 신뢰다. 약속이 무너진다면 앞으로 한나라당이 국민 앞에 무슨 약속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당의 존립 문제”라면 대립각을 세웠다. 세종시 축소가 아니라 오히려 원안 플러스 알파를 주장해 관철됐다.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이미지로 각인된 신뢰의 정치인 박근혜는 대통령까지 거머줬다. 약속·신뢰·원칙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 철학 키워드다. 이같은 키워드가 주효해 박근혜 대통령지지도가 최근 여론조사에서 68%에 육박하고 있다.

물론 공약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지켜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돈이 드는 복지 공약은 속도 조절을 하거나 일부 후퇴해도 봐 줄 수 있다. 하지만 돈이 들지 않는 기초단체장 공천제 폐지 공약을 번복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인 신뢰를 뒤집는 일이다.

이번 6.4지방선거는 집권 2년 차에 접어든 박근혜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이 강하다. 민심은 배가 같다고 했다. 성난 민심을 거스리면 배가 뒤집힐 수 있다. 지금이라도 박 대통령은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대해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 국민앞에 설명해 이해를 구해야 한다. 박근혜정부 1년간 정치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대화와 설득이었다. 설득의 효력은 논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진실성과 정직함이 전제돼야 한다. 그리고 역지사지(易地思之)할 수 있을 때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바 꿀 수 있다. 왜 박근혜 대통령은 기초선거 정단공천제 폐지에 대해 ‘꿀먹은 벙어리’인가.

국민을 원숭이로 보는 정당 심판해야

지방선거를 앞두고 솔깃한 공약이 또 넘칠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또 까마득히 잊히고 말 것이다. 선거 때만 을이 되고 선가가 끝나면 갑이 되는 정치인의 모습도 보게 될 것이다. 원숭이를 희롱하는 저공 같은 정치인, 아무렇지도 않게 대 국민 공약을 파기하는 정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선거는 검증이고 심판이다. 식언과 허언을 일삼으면서 국민을 희롱하는 정당과 정치인에 대해 심판해야 한다. 유권자가 갑인 경우는 선거 때 단 한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