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꿈에 떡맛 보듯 볕구경하는 꺾어진 응달은 아직 군데군데 잔설로 누운채 멀찍이서 불러온 3월, 썰렁했던 학교에 이제 훈기가 채워진다. 눈보라에 퍼질러 달포를 멀뚱거린 놀이시설도 시끌시끌하다. 새내기 입학생과 선생님 그리고 새내기 학부모까지 듬성듬성 낯설다. 얄팍한 젖냄새가 코팅된 아이들이 유치원에 오고 맞춤법 하나를 제대로 쓸 줄 모르지만 고학년이랍시고 거들먹댄다. 도시 아이들 같으면 서너 개나 될 학원가방을 구경조차 못한 20여년 전, 벽지학교를 기억한다. ‘百里又同風’이라 했던가? 배꼽에 붙은 때를 애써 덮으려 물려입은 티셔츠며 다 쓴 잉크병을 찾아 민들레를 꽂던 아이들은 언제나 산 넘어 친구보다 햇빛 몇 줌까지 손해 보지만 연일 탱글탱글웃음을 살찌웠다. 밥알 몇 개 달라붙은 황토 고구마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 선생님을 생각했다.

‘첫 단추, 첫 사랑, 첫 직장, 첫 째, 첫 선, 첫 눈’은 평생을 두고 설렌다. 교원자격증, 임용고사, 발령의 순항과 함께 출발하는 새내기 선생님이야말로 처음 출하된 햇과일처럼 신선하고 기대부푼 자원이다. 교직은 매력 덩어리다. 자율 역량의 정도가 가장 높다. ‘스스로 원칙에 따라 어떤 일을 하거나, 자신을 통제 또는 절제하여 해낼 수 있는 힘’이란 사전적 의미처럼 준비·진단·해결 방안 구안 및 선택·실행 절차에서 상당한 자율과 창의를 기반으로 한다. 인생에 있어 멘토가 필요한 것은 경험과 미경험 사이 조언 또는 도움을 통해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듯, 아이들에게 미래를 컨설팅을 해주는 일은 선생님 아니면 그 누구도 불가능하다. 첫 숟갈과 배부름 관계의 속담은 새내기를 위한 금언(金言)이다. 늘상 신·구 교원 사이가 초면처럼 낯설고 아주 기본적인 예의까지 굶주린 멍에로 부대낀다면 어떻게 두 번째 숟갈을 기대하랴. 제 노릇 못하는 교권이 과부하에 걸려 걱정하는 소리와 우려도 꽤 높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교육은 행정이 아니라 인간적 배려라는 확고한 의지가 바로 빛부신 선생님 몫이다. 사도(師道)란 가르침의 정체성과 함께 교육 흐름에 익숙하여 사람 만들기 즉, '더불어 살아갈 동력'인 제대로 된 가르침의 본(本)이 돼야 한다.

‘업무보다 몇 배 어려운 게 소통·인간관계’임을 몸살로 읽는다. 학생과 담임, 담임 학부모간, 교무실 행정실, 교사와 교감 교장 간 조근조근 협조할 사항이 많다. 그럴 때마다 1:1 지도와 조언을 받는 멘토링은 일반적으로 우수한 경력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선·후배, 새내기 선생님이 마주하여 업무 능력 향상과 적응을 돕게 된다. 교원자격증 유무를 떠나 선생님 유형은 꽤 여러 가지다. 담임, 전담, 상담, 기간제, 강사, 방과후 학교, 실무, 돌봄교실, 엄마품 멘토링과 학교 밖에서의 학원, 학습지 선생님을 합하면 분류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아 교직원 사이 호칭을 두고 민망할 때도 있다. 그야말로 선생님 홍수시대다. 선생님은 가르치는 것 외에 정신을 올곧게 심어주는 지기이다. 의식 속에 자리잡지 못하면 헛된 교육 아닌가? 전통적으로나 법규적으로 교직은 이런저런 윤리를 요구 받는다. 때로는 불편하고 말 못할 어려움도 따르지만 조금만 뒤 돌아보면 숭고한 도덕성과 절제, 권위를 아름답게 발현함을 깨닫게 된다. 부디, 아이들과 열애하며 바른 삶의 수월을 향한 동행에 ‘나는 선생님’임을 잊지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