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영국 일간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글렌 그린월드는 '당신이 흥미를 가질 만한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라는 짤막한 내용의 메일 한 통 받았다.

발신자는 이어 노트북에 암호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라고 요청했다. 그린월드가 따르지 않자 암호 소프트웨어를 내려받는 방법을 영상으로 만들어 보내줬다.

컴퓨터 문외한인 그린월드가 이를 무시하자 발신자는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로라 포이트러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포이트러스는 그린월드의 친구로 미국 보안기관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등 진보 성향 인물이었다.

포이트러스가 받은 이메일은 '나는 정보기관의 수석 요원입니다. 당신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라는 내용. 평소 정부의 도청에 극도로 민감했던 포이트러스는 요구에 따라 암호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발신자와 접촉했다.

포이트러스는 그린월드에게 이런 사실을 알린 뒤 철저하게 비밀리에 접선한 끝에 2013년 6월 홍콩에서 발신자를 만났다.

발신자는 에드워드 스노든.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미국 국가안보국(NSA) 요원으로 이후 미국 정보당국이 무차별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했다는 역사상 최고의 국가기밀을 폭로한 인물이다.

스노든이 접선 자리에서 공개한 내용은 엄청났다. NSA와 영국 정보통신본부(GCHQ)에서 빼낸 수백만 건의 일급비밀 문서의 실체를 알렸다.

NSA는 수백만 명으로부터 전화 기록, 이메일, 표제 정보와 제목 등을 무차별적으로 수집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애플 등 상당수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NSA와 엮여 있었고 NSA는 이들 기업의 서버에 '직접' 접근한다는 내용이었다.

가디언은 정보기관처럼 움직이며 기사를 준비했다. 미국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을 통한 감시활동 폭로기사가 1탄이었다.

기사 보도 예정 사실을 접한 미국 백악관은 가디언 측을 설득했고 영국 정부에는 압력을 가했다. 스노든의 존재가 발각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가디언에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아 보였다.

고심 끝에 결단을 내린 가디언은 그린월드의 이름으로 첫 기사를 내보냈다. 이어 특종 두 편이 차례로 나갔고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관료들에게 미국의 잠재적인 해외 사이버 공격 대상 목록을 작성하라고 지시한 내용까지 보도됐다.

스노든은 곧바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IT 천재이자 수배 대상 1위가 됐다. 워싱턴포스트와 가디언 선정 '올해의 인물'이 됐고,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거론된다.

세계적인 이슈를 터트린 스노든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홍콩을 탈출해 에콰도르로 가던 도중 러시아에서 발이 묶여 임시망명자로 숨어 살고 있다.

흥미진진한 드라마 같은 이 이야기의 풀스토리를 담은 '스노든의 위험한 폭로'가 최근 국내 번역됐다.

저자는 가디언 모스크바 지국장을 지낸 프리랜서 기자 루크 하딩이다. 그는 냉전 종식 이래 처음으로 기자 신분임에도 러시아에서 추방당한 인물로 '위키리크스, 비밀의 종말', '거짓말쟁이: 조너선 애트킨의 몰락' 등의 논픽션을 썼다.

저자는 스노든의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에 빠진 성장기, CIA에서 일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낀 일화, 가디언 특종 보도 관련 뒷이야기 등을 소설 같은 문체로 생생하게 풀어냈다.

뉴욕타임스 등을 통해 널리 공개된 특종 후일담보다 더 내밀한 정보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전하는 책이다.

가디언 편집장 앨런 러스브리저는 서문격인 '인터넷 정복자들'에서 "우리는 스노든이 원한 것처럼, 개개인의 안전과 자신의 민감한 정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의 조치를 취한 것이 우리의 사명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은경 옮김. 프롬북스. 356쪽. 1만5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