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분(草墳)이란 장례 풍속은 시신을 일찍 매장하지 않는 것이다. 집안의 평상이나 반듯한 돌, 혹은 축대위에 관을 올려놓고 짚이나 억새풀로 덮어 1∼3년 동안 그대로 둔다. 많은 시간 망자와의 동거가 시작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서해, 남해안 일부 섬 지역에 초분 유속이 남아있다는 놀라운 보고가 있다.
 
고대 북방 민족의 풍속을 보면 곧 바로 시신을 땅에 묻지 않았다. 말갈은 신단의 주변이나 냇가 자갈밭에 시신을 놓아 독수리나 들짐승의 밥이 되게 한 다음 나중에 뼈를 수습하여 매장했다. 고구려에서는 집안에 빈소를 만들어 놓고 3년간 시신과 동거한 후 좋은 날을 잡아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당나라에 유학하여 득도한 신라 왕자 교각은 당시 유행했던 화장보다는 육신의 영생을 염원한 것인가. 구화산(九华山)에서 수학한 교각은 99세까지 살았는데 제자들에게 사후 3년간 시신이 썩지 않으면 자신의 몸에 구리를 부어 등신불(等身佛)을 만들어달라고 유언한다.

교각이 입적하는 날 구화산이 허물어 졌고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났다고 한다. 제자들은 3년 후 시신이 썩지 않자 육신에 금을 입혀 등신불로 만들어 영원히 시신과 동거하는 기록을 남긴다. 이로 인해 구화산은 지장보살 중심도량이 되었으며 교각은 중국 불자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교각의 설화는 지금도 으뜸가는 등신불의 스토리텔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려 후기 비운의 왕 우(禑)는 역성혁명을 일으킨 세력들에 의해 요승(妖僧)이라고 일컬어지는 신돈의 아들로 폄하됐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우왕을 신돈의 혈육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을 위사(僞史)라 해석하고 있다.

우왕의 여러 부인 가운데 영비 최씨가 있었다. 그녀는 최영장군의 서녀였는데 우왕이 비로 맞아들인 것이다. 우왕이 젊은 나이에 이성계 일파에게 죽음을 당하자 최씨는 한동안 시체를 매장하지 않고 곁에 두고 살았다. 우왕이 살아있는 것처럼 예우를 하며 매일 밤 시신을 안고 잤다고 한다. 그리고 이웃들에게 곡식을 얻으면 깨끗하게 씻어 제수를 만들어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

우왕과 영비의 이런 비극적인 사연은 조선 초기 학자 이륙(李陸)이 지은 야담 ‘청파극담’에 실려 있다. 영비의 한이 시신동거라는 극단으로 이어진 것인가.

조선 중엽 선비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부친이 밖에 나가 불량배에게 목숨을 잃었다. 형제는 통곡하며 시신을 장례 지내지 않고 안방에 모셔 두었다. 형제는 수소문 끝에 부친을 죽인 자를 찾아 원수를 갚았으며 그의 장기를 꺼내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관아에서 이들을 잡아 문초했으나 복수의(復讐義)의 고례에 의해 벌주지 않았다.

지난 2004년 인도에서 있었던 실화 한 도막. 박사학위를 지닌 가프루 교수는 어느 날 친구를 집으로 초대 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가프루 교수 안방에 해골이 앙상한 시신이 누어있었던 것. 놀란 친구가 그 내력을 물었다. 가프루 교수는 시신이 어머니이며 돌아가신 후 너무 그리워 묘지에서 시신을 발굴해와 동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친구는 가프루 교수를 설득하여 장례를 치러줬다. 그런데 가프루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우울증이 도졌고 얼마 후 묘지 앞에서 자살했다고 한다.

중학교 3학년생이 어머니 시신과 함께 6개월간을 살았고 한 20살 청년은 10대 여자 친구를 폭행해 숨지자 오피스텔에서 한 달 넘게 생활하다 검거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약사가 간암으로 숨진 남편의 시신과 7년간이나 동거한 사실이 알려져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보도를 보면 자녀들은 죽은 아버지의 시신과 함께 살면서 집을 나갈 때 마다 인사까지 했다. 약사는 지금도 경찰관에게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롱 타임 시신동거 사례다.

시신동거는 엽기적이고 끔찍하지만 고금 특별한 이들에게 있어 망자와의 이별을 쉽게 끊지 못하는 한(恨) 같은 것이어서 한편으론 측은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