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림칠현(竹林七賢)은 위(魏)·진(晉)시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산간에 은거한 선비들이다. 이들은 모두 술을 좋아했는데 사람들은 ‘술고래’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취하지 않고서는 불만과 한을 달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들 중 혜강(嵆康)이란 사람은 됨됨이가 뛰어나 왕족의 여인을 아내로 삼아 살았다. 어느 날 정승 사마의로부터 부름을 받았으나 7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그 중 하나가 ‘관리가 되면 술을 마음대로 마실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유영(劉伶)은 외출할 때 항상 술병을 허리춤에 끼고 다녔다. 술을 너무 마시자 아내가 울면서 애원했다. 유영은 마지못해 아내에게 천지신명에게 맹세를 하겠으니 술과 고기를 사오도록 했다. 유영은 아내가 장만해 온 술잔에 가득 술을 붓고는 "너는 술로 천하에 이름을 남길 것이다"라고 말하며 단숨에 잔을 비웠다는 고사가 전한다.

그러나 으뜸 술고래라면 당나라 주선 이백(李白)을 꼽을 수 있겠다. 지독한 애주가로 주점마다 많은 외상값을 지고 다녀 부인이 애를 먹었다고 한다. 이백은 끝내 술이 취해 달 밝은 밤 호수에서 놀다 물에 빠져 풍류인생을 마감한다.

이백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를 들어보면 술을 마실 때는 황제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호기를 엿볼 수 있다.

“이백은 술 한 말에 시 백 수 /장안의 저잣거리 주막에서 잠든다 /천자가 불러도 배에 오르지 않고 /‘신은 술의 신선이오’하고 말한다네.”

우리나라에선 태종 무열왕 김춘추(金春秋)를 술고래 반열에 올려 봄직하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태종은 하루 식사로 쌀 6말, 꿩 10마리, 술 6말씩 마셨다.”고 나온다. 하루 나 홀로 술을 6말씩이나 즐겼다면 대호주라 할 것이다. 김춘추는 영특하고 풍채가 좋았으며 술도 잘 마셔 당나라 황제에게 후한 점수를 받았다.

태조 이성계의 맏아들 방우(芳雨)는 알콜 중독자였으며 이로 인해 일찍 죽어 제왕에 오르지 못했다. 방우는 당시 귀족들만이 마셨던 귀한 소주를 즐겼는데 그만 술병을 자초했다고 한다. 아마 간경화로 조서한 것이 아닌가 하며 그 바통을 야욕에 눈이 어둔 셋째 방원(태종)이 이어받았다.

성종도 술고래 임금으로 기록된다. 매일 밤 술상을 들이게 하고는 기생들을 불러 여악(女樂)을 즐겼다. 성종은 너무 술을 마셔 각혈까지 했는데 흰 비단병풍을 세워놓고 붉은 선혈을 병풍에 뱉으면서 즐거워했다고 한다. 피를 토할 정도로 술을 마셨으니 위나 목에 상처가 났던 모양이다.

이런 기행(奇行)이 중전 윤씨에게 알려지고 이를 강력히 간하는 과정에서 임금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내 사사(賜死)되는 비극을 불러일으켰다. 성종의 일탈된 폭음 기행은 훗날 엄청난 사화(士禍)로 번지게 되고 궁중을 피로 얼룩지게 한 참극의 도화선이 된다.

아들 연산군도 술고래로 만취하면 온갖 추태를 벌였다. 연산은 성종의 기행을 뛰어넘어 무고한 신하들을 죽이고 음행에 탐닉 하는 등 패륜의 극치를 보였다. 성종이 현군이라 하지만 아들 연산이 부도덕했던 것은 이런 부왕의 행태를 잘못 배운 것은 아니었을까.

한국인들이 세계 최고 주당으로 선발됐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 성인들은 1인당 일주일 동안 평균 13.7 잔의 술을 마시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한 비즈니스 전문매체가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술고래로 유명한 러시아인들보다 2배 이상 이나 많이 마시며 전 세계 44개국 중 가장 많은 양이라고 한다.

삼한시대부터 술을 좋아하는 민족이란 것은 중국사서에도 기록되지만 세계 제일의 술고래로 각인되는 것은 기분 좋은 호칭은 아니다. 30대 젊은 층의 암 발생률이 세계 제일이라는 통계도 이런 폭음문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술은 적당이 마셔야 약이 되며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