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청주 연초제조창 매각 과정에서 거액의 뇌물을 챙겨 중형을 선고받은 전 청주시 공무원 이모(52)씨의 범행이 항소심에서도 단독 비리로 결론났다.

이씨가 항소심에서 돌연 '시장 연루'를 주장, 의심을 눈초리를 받았던 한범덕 청주시장은 '악재'를 털어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방선거를 준비할 수 있게 됐다.

KT&G 측 용역업체 N사 대표 강모(50)씨로부터 6억6천20만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은 이씨는 지난달 15일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서 1심 때와는 전혀 다른 주장을 펼쳤다.

자신은 한 시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금품을 받아 보관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라고 진술한 것이다.

이씨는 "한 시장의 정치자금으로 알고 있었다"며 "강씨가 돈을 건넬 때 5천만원은 쓰고 나머지는 보관만 하고 있으라고 해 그와 한 시장이 사전에 얘기를 끝낸 것으로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씨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심지어 한 시장과의 사전 협의 또는 추후 협의가 있었는지를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도 '없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한 시장의 연루 가능성보다는 궁지에 몰린 이씨가 형량을 줄이고자 근거없이 무리한 주장을 편 것 아니었느냐는 분석이 대체적이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이씨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 뇌물사건이 한 시장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고법 형사1부(황병하 부장판사)는 지난 7일 열린 이씨의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과 청주시장 사이에 뇌물수수에 관한 협의나 위탁 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다"며 "금품의 처분 권한이 피고인에게 있었으므로 단순히 보관만 했다는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며 이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또 "뇌물의 일부을 개인 대출금으로 갚고, 본인 명의의 주식거래 양도성 예금증서에 예탁해 이용한 점으로 미뤄 피고인 개인이 받은 것이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결국 한 시장을 겨냥한 '배후설'은 억측에 불과하다는 것을 재판부가 확인해준 셈이다.

뇌물수수로 인해 청주시가 옛 연초제조창을 과다하게 매입한 것 아니냐는 혈세낭비 의혹도 항소심에서 말끔히 털게 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1심에서 각각 징역 2년을 선고받은 KT&G 임원 최모(60)씨에게 징역 1년을, 또다른 임원 이모(53)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최씨 등이 뇌물을 건네긴 했지만 옛 청주연초제조창 매각대금 350억원이 감정평가금액 359억원보다 낮게 결정된 것으로 보아 매각대금 결정에 영향을 주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감형 배경을 설명했다.

재판부의 이런 판결은 충북도 사상 최고 뇌물 스캔들과 혈세 낭비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던 한 시장과 청주시를 둘러싼 모든 의혹을 털어준 셈이다.

청주시의 한 관계자는 "한 시장은 물론 청주시 입장에서도 불필요한 오해를 속 시원히 풀게 돼 다행"이라며 "개인의 잘못된 처신이 제3의 피해자를 만드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항소심에서도 1심과 같은 징역 9년과 벌금 7억원, 추징금 6억6천2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씨는 또 수뢰액의 3배에 달하는 19억8천60만원의 징계 부과금을 고지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