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은 고도 경주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 한다. ‘절은 하늘의 별만큼 많고, 탑은 기러기가 줄지어 서 있는 듯하다(寺寺星張 塔塔雁行)’ 불교정토의 번화한 모습을 표현한 이 글은 사학도라면 제일먼저 암기하는 명구로 회자되고 있다.

전국의 지명 가운데는 탑말, 탑동, 탑선이. 절골, 사곡, 부처골, 부처댕이, 불당골이라고 불리는 곳이 많다. 현장 답사를 해 보면 십중팔구는 불교유물이 남아있거나 유적이 있음이 확인된다. 간혹 탑이나 석불이 없는 경우가 있는데 내력을 알아보면 오래 전에 어디론가 옮겨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유물들이 불행하게도 일제 강점기 반출되어 가슴을 치는 경우가 많다.

1970년대 후반 필자는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한 흥덕사지(興德寺址)를 찾겠다고 청원군 북일면 비중리를 답사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한 경작지에서 목이 잘려 나간 좌불(坐佛)을 발견했다. 주민들에게 수소문 한 결과 불두(佛頭) 하나가 인근 무당 집에 보존되고 있음을 알게 됐다. 무당을 설득하여 불두를 가져다 맞춰보니 딱 들어맞았다. 얼굴에는 미소가 잔잔하여 너무 아름다웠고 조각은 유려했다. 어떻게 이 2등분된 불상이 천여년 간 비바람을 맞으며 밭둑에 굴러다녔을까.

이 불상의 조성 시기는 통일신라후기~고려초로 추정되었다. 청주인근에서 찾아진 얼마 안 되는 불상가운데 수준작이었다. 이 좌불은 후에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임시로 보관 되었다가 지금의 국립청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불가에서의 탑(塔)은 부처의 진신 사리나 혹은 성보(聖寶)를 봉안한 매우 중요한 경배의 대상이다. 우리나라에서 탑이 조영되기 시작한 시기는 불교가 전래 된 4세기 후반부라고 한다. 처음에는 목탑(木塔)이 지어졌다가 삼국기 말부터 벽돌탑(塼塔)이나 석탑이 유행했다.

삼국시대 지어진 목탑은 화재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외난이 많았던 우리나라에는 현재 한 기(基)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목탑이 건설된 자리만이 여러 절터의 유적에서 찾아진다. 석탑은 화마에도 보존되기 때문에 현재도 많은 양이 남게 된 것이다.

충주 가금면 탑평리에 있는 7층석탑은 국보 제6호로서 통일신라 성대(聖代)의 최대 탑으로 평가 받고 있다. 중원경에 왕기가 서리므로 반역의 기를 누르기 위해 탑을 세웠다든지 신라 원성왕대 국토의 정 중앙을 표시하기 위해 건립했다는 창탑 설화가 채집된다. 어쨌든 이 탑은 중원경으로 육부호민을 옮기고 제2수부로 발전시키려 했던 신라 왕실의 의지가 만들어 낸 걸작의 작품이라 할 것이다.

탑평리 절터는 본래 고구려 시기부터 절이 세워졌다가 신라가 점령한 후에도 계속 향화(香火)가 이어진다. 절터에서 수습되는 유물 조각들을 보면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고려시기까지 번성했음을 알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절의 명칭이 밝혀지지 않은 점이다.

절터 가까이 중원고구려비(국보제205호)와 장미산성(사적400호)등 삼국시대 유적과 누암리고분군(사적제463호)등이 자리 잡고 있다. 탑평리 일대를 진흥왕이 설치했던 국원경성의 치지(治址)로 비정하는 학자도 있다. 그렇다면 장미산성은 고구려가 이 지역을 지배하고 이름 붙인 국원성지는 아니었을까. 장미산성의 성벽을 보면 만주 지안(輯安)이나 고구려 강역에 산재한 성지의 축성방법을 그대로 닮고 있다.

충주시 가금면이 1일부터 ‘중앙탑면’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가금면이란 이름이 탄생한 것은 지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가흥면과 금천면을 통합하면서 한 글자씩 따서 만든 것으로 1백년 역사가 흐른 셈이다. 가금이란 이름이 ‘집에서 기르는 닭이나 오리등을 지칭하는 것 같다(家禽類)’고 하여 의회가 논의 끝에 면민 투표로 개명을 결정했다고 한다.

중앙탑이란 이름은 탑이 국토의 중앙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속칭이다. 학계서는 ‘중앙탑’이란 이름을 쓰지 않고 ‘중원탑평리7층석탑’이란 명칭을 쓴다. 가금면을 중앙탑면이 아닌 ‘국원경면’이나 ‘중원경면’으로 개명했으면 역사성이 더 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준다. 탑평리 일대의 유적군(遺蹟群)이야 말로 중원문화의 심장이며 앞으로 규명해야 할 한국 고대사의 보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