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명종대 무신 경대승(慶大升)은 비운의 인물이었다. 그는 청주출신으로 무신난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정중부를 죽이고 다시 권력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려 했으나 요절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1백년 악순환을 거듭했던 고려무신정치사는 바뀌었을지 모른다.

정중부의 무신 쿠데타는 문신들에게 모멸적인 대우를 받은데 대한 앙갚음에서 발단 됐지만 그는 신하로서 왕과 태자를 시해하는 등 중범죄를 저지른다. 20대의 의로운 청년장군 경대승은 골리앗 같은 정중부를 일격에 제거한다. 고려사에는 경대승이 정중부일파를 제거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날 밤 경대승은 결사대 30명을 이끌고 황궁담장을 넘어 들어가 친위대를 참살하고 황궁을 장악했다. 같은 시각, 허승과 김광립이 정중부 아들 정균을 살해했다. 경대승은 명종을 안심시키는 한편 정중부와 송유인을 주살할 것을 청했다. 황궁의 변란소식에 피신했던 정중부와 송유인이 주살되고 그들의 참수된 머리가 거리에 내걸렸다. 이튿날 조정신료들은 경대승을 청해 축하연을 베풀었다. 경대승은 “선왕을 시해한 대적(이의민)이 버젓이 살아있거늘 경들은 축하연 따위나 벌이겠단 말인가?!” 질타를 하며 상을 뒤엎고 나가버렸다.”

경대승은 30세의 나이로 왜 갑자기 죽었을까. 이는 역사의 미스테리로 남는다. 경대승이 급서하자 권력은 이의민(李義旼)에게 돌아간다. 그는 경대승이 권력을 잡자 경주로 피해 숨었는데 소식을 듣고 눈치를 보다 다시 개경으로 올라와 정권을 장악했다.

이의민은 장신으로 수박(手搏)을 잘해 평소 화가 나면 벽을 주먹으로 쳐 구멍을 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총애하여 장군으로 임명한 어린 의종의 척추를 부러뜨려 죽인 악랄한 인물이다. 영화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의리와 신의도 헌신짝처럼 버렸다.

이의민을 제거한 인물이 바로 고려역사에서 60년 최씨 무단 정치사를 기록한 최충헌. 그는 문신(文臣)의 자질을 갖춘 무인이었지만 냉혹한 독재자였다. 최충헌이 이의민을 제거한 계기는 작은 분쟁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의민의 철부지 아들이 최충헌 동생의 비둘기를 강탈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당시 이의민 일당 제거에 직접 참여한 사람은 동생 최충수와 대장군 이경유 등이었다.

최충헌은 권력을 잡은 후에 네 명의 왕을 갈아치웠고 수많은 문무 관원들을 살해했다. 거사를 도왔던 동생 최충수가 자신의 딸을 왕비로 간택시키려하자 무자비하게 숙청했으며 동지였던 대장군들도 함께 도륙했다. 자신의 권력을 넘볼 수 있는 경쟁자라면 혈육도 친구도 혈맹도 없었다.

최충헌은 강종의 딸(서녀)을 부인으로 맞아 정화택주로 삼고 부인 임씨를 ‘수성택주’로 불렀다. ‘택주(宅主)’란 본래 왕녀에게만 허용되어 있던 칭호. 자신의 저택을 짓기 위해 집 주위에 있는 민가 1백 채를 강제로 허물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최충헌은 제왕보다도 더 큰 권세를 누린 셈이다.

최근 북한의 제2인자 장성택 처형과 관련한 권력의 암투를 보면 과거 고려 시대 무신시대의 역사가 되살아난 착각을 갖게 된다. 사형을 당한 장성택이 지난해 군부 실세였던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의 숙청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장성택 쪽에서 리영호 총참모장 집을 급습해 20여명을 사살하고 리를 체포했다고 한다.

최근 장성택의 제거에는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용해가 간여했으며 군인 1백50명이 상의 이권부서를 찾아가 총격전을 벌여 탈취했다는 보도가 있다. 절대 권력자가 사망한 이후 어린 김정은을 내세우고 피터지게 싸우는 북한 권력투쟁의 저면에는 이권장악이란 비밀이 숨어있음을 발견 할 수 있다.

무단정치는 역사가 알려주듯이 오래가지 못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라는 탈리오의 법칙과 권력쟁취를 위한 숙청의 악순환만이 반복될 뿐이다. 어디 이들이 굶주린 주민들의 삶과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