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도 간다. 마지막 한장 남은 달력을 보면 모두에게 만감이 교차되는 느낌이 있을 것이다. 이 때쯤 한 장의 그림이 생각난다. 세계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프랑스의 위대한 화가 밀레의 '만종' 그림이다.

미술평론가의 말을 들어보자. 밀레는 원래 누드화가였다. 그의 누드화는 상당한 인기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전시회에 온 두 젊은이가 자신의 그림을 보면서 음담패설을 나누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당장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더라도 인간의 심성들을 맑게 해주는 그림을 그리기로 작정하고 아내의 동의를 얻었다. 밀레는 그날부터 아름다운 전원풍경과 소박하게 살아가는 농부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이때 그린 그림이 바로 '만종'이다.

평화로운 농촌의 황혼의 들녁, 추수를 마친 수평선의 들판은 고요하다 못해 적적하기까지 하다. 멀리 교회의 종소리가 들려오는 듯, 부부는 잠시 일손을 놓고 경건하고 평화롭게 기도를 드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종교화로도 여겨질만큼 사랑을 깊이 받아왔다. 종교적 경건함과 고요함이 그림에 듬북 담겨있고 채색도 따스하고 온화해서 서정적 사실주의라 여기왔다.

그런데,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평화로움과 따스함이 느끼지는 동시에 알 수 없는 애잖함을 느낄 수 있다. 밀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 아니었고, 다만 가난으로 굶주리고 당시 유행병인 콜레라로 비참해진 농민들의 처절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싶어 했다.

해질녁 세상은 덧없이 평온한데, 이 젊은 부부는 감자 바구니를 사이에 두고 수확에 기쁨에 감사하듯 기도드리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감사와 기쁨의 기도라기엔 웬지 모를 슬픔이 베어나오는 것은 왜 일까요? 처음 바구니안의 감자는 다름아닌 아기의 시체였답니다. 생활고에 시달려 굶주려 아기의 시체를 바구니에 담아 묻기 전에 그린 것인데, 밀레의 친구는 그렇지 않아도 사회 고발적인 그림들 때문에 비평가로부터 혹평을 받고 있는 밀레가 걱정이 되었는데 이 섬뜩한 광경이 세상에 불러 이르킬 파장이 우려해 극구 말렸고 결국 밀레도 이를 받아들여 감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엄숙하고 경건한 종교화로 사랑받는 밀레의 '만종' 그 이면에는 삶으로부터 힘겹게 살아내야하는 가난, 목숨을 앗아가는 병마, 허기진 굶주림을 감춘 붉게 물든 노을을 뒤에 가슴을 후벼파는 발톱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되돌아보는 1년이 밀레의 '만종'같은 삶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사람이 참 많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산업화와 물질화로 타인에게 기 죽지 않기 위해 곁은 번지러하게 행세하지만 속은 곪아 터지는 아픔속에 하루 하루 살아가는 사람이 현대인이라 생각된다. 육의 물질은 풍요와 넘침이 있지만 영의 마음은 빈곤과 결핍으로 달팽이처럼 자꾸 자아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음을 그 누가 부인하랴?

세모에 서면 나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절대자나 아주 가까운 누군가에게 나의 달려온 길과 그 길에서 생긴 나의 노력과 인고, 상처와 아픔에 다독다독 어깨를 토닥거리면서 진실로 위로 받고 싶어짐이 나 만의 생각일까? 인생의 길이 광야같은 길이라고 하지 않는가? 성선경 시인의 '소금밭'이 삶이라고 하기도 하니....

"삶의 바닥은 늘 염전(鹽田)이다. / 발자국마다 고이는 시간의 간수 / 얼금뱅이 곰보 왕소금 / 헉헉 나는 목마른 낙타같이 숨이 차 /사막의 모래등 같은 혹 떼어 버리고 싶지만 / 쌍봉같이 짊어지고 가야 할 내 생애의 소금가마니 / 달마의 눈꺼풀같이 휙 떼어 던져 버리지 못한다. / 끝끝내 던져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저 소금 장수의 짚신같이 늘 간수가 흐르는 / 내 삶의 바닥은 늘 염전이다. / 오오 저 마흔 몇 해 /잘 저린 자반고등어 한 마리."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교수직을 내 던지고 그리스 조르바처럼 살기 원하는 놀이전문가의 김정운 말을 귀 담아 들어보자.

"'어렵다 어렵다'하는데, 우리가 언제 어렵지 않은 적이 있었는가?  힘든 지금 이 순간만 좀 넘기면,  은퇴하고 나면, 자식들이 좀 크고 나면,  '내일부터'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건 거짓말이다!"

올 한 해도 앞을 보면 항상 절벽이였지만 뒤를 돌아보면 기적이였다. 영의 눈을 뜨면 매일이 기적임을 알아서, 뜨겁게 포옹하여 서로 위로하고 위로 받는 세모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