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역사에서 간신의 대명사격이라면 아무래도 삼국지에서 유비(劉備)와 한판 붙은 천하의 조조(曹操)다. 그는 간신으로 기록되는 것도 모자라 간웅(奸雄)으로 까지 표현된다. 판소리 적벽가(赤壁歌)에서 조조는 아주 몹쓸 인간으로 묘사되고 전쟁에 패한 모습은 비겁하기 짝이 없다.

-(전략)...조조는 살짝 틈을 타 달아난다. 관운장은 달아나는 조조와 군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한 번 얼러 댄다. "이놈들 어디로 달아나느냐!" 조조 이하 군사들은 납작 땅에 엎드려 울면서 빈다. "장군님, 그저 살려 주시오." 더구나 승상 조조는 무릎 꿇고 앞에 엎드려 닭똥 같은 눈물을 찢어진 홍포 앞자락에 뚝뚝 떨어뜨리며 애망 갈망 손을 모아 싹싹 빈다...(하략)-

그러나 조조는 실제 픽션 삼국지와는 다른 인물이었다. 조조는 주옥같은 명시를 많이 지은 감수성 짙은 시인이었다. 그의 단행가(短行歌)를 들으면 내공 있는 인생의 연륜을 엿 볼 수 있다. 겁쟁이도 아니었고 준법정신이 투철했으며 인재를 등용할 때는 이성적으로 했다. 현대 경영학에서 조조의 경영학을 벤치마킹하려는 시도는 벌써부터 있어 왔다.

이처럼 충신과 간신은 시대에 따라 역사적 평가가 다르다. 오랜 역사동안 충신으로 지칭되던 인물이 하루아침에 폄하되고 간신이라고 침을 받던 인물이 영웅이자 충신으로 격상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조선은 대명의리(對明義理)로 만주족이 세운 청(淸)에 대해선 면종복배했다.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면서 척화를 주장한 청음(淸陰) 김상헌은 4백50년동안 척화신이자 충신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화의를 주장한 영상 최명길(崔鳴吉)은 근세까지도 청나라에 굴복한 비굴한 신하로 사가의 비판 대상이 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지금은 청음 보다 당시 백성들의 안위를 걱정한 최명길의 정치적 판단을 더 높이 평가하는 시각이 생겼다.

'설원(說苑)'이란 책은 2천년전 한(漢)나라때 학자 유향(劉向)이 지은 저술. 1권은 임금에 대한 군도(君道)을 설명하고 2권은 신하들에 대한 신술(臣術)을 수록했다. 바른 벼슬아치를 여섯 유형으로 나누어 육정(六正)이라 했으며 나쁜 벼슬아치를 육사(六邪)로 분류했다.

육정은 성신(聖臣), 양신(良臣), 충신(忠臣), 지신(智臣), 정신(貞臣), 직신(直臣)이다. 육사는 한자 표기가 조금 어렵다. 패신(貝臣.지위에 안주 봉급만 탐내는 신하), 유신(諛臣·아부 신하) 간신(姦臣·겉과 속이 달라 겉으로는 성인군자 인척하면서 실제는 사악한 마음을 품은 신하), 참신(讒臣·분열과 분쟁을 일삼는 신하), 적신(賊臣·사적인 도당을 만들어 지위를 높이는 신하), 망국신(亡國臣·상사를 모함하고 현명한 사람을 배척하는 신하)을 지칭한다.

육정의 충신과 육사의 간신은 대립되는 개념이다. 충신은 목을 내놓고 옳은 말을 하며 간신은 임금의 시선을 흐리게 하여 망치게 하는 신하다. 처음엔 간신의 모함이나 참소에 몰려 충신이 당하지만 결국은 간신이 몰락하거나 억울함이 풀려 햇빛을 본다.

그러면 궁극적으로 간신에게는 어느 형벌이 내려진 것일까. 고려사 공민왕조를 보면 간신 김횡(金鐄)을 죽여 그 사지를 전국에 고루 돌렸다는 기록이 있다. 또 효수되거나 사약을 받은 사람도 있고 당대는 영화를 누리다 죽어서 부관참시 당하는 간신도 있다. 간신을 사악시하여 역모이상의 중죄로 다스린 모양이다.

북한 장성택 실각 '간신론' 대두 … 시대착오적 발상

북한에서 제2인자인 장성택의 실각과 더불어 때 아닌 ‘간신론’이 대두되고 있다. 노동신문이 충신과 간신의 차이를 논평하면서 '아무리 오랜 기간 당에 충실했어도 한순간 간신이 될 수 있으며 신념과 의리를 지키면 충신이 되지만 버리면 간신이 된다'고 풀이했다고 한다.

장성택의 심복 두 명이 인민재판을 받은 후 처형되고 현재도 친족들 까지 체포가 진행 중이라니 싹을 송두리째 뽑으려는 것 같다. 과연 이들은 어떤 일을 하다 죄를 지어 간신으로 찍힌 것일까? 일설에는 장성택의 개혁개방을 주도하다 강경파에게 당했다는 설도 있다.

봉건사회 역모치죄의 삼족멸(三族滅)을 방불 하는 끔찍한 처형태풍이라 혀를 찰만하다. 과연 이런 시대착오적 독재가 지구상에 얼마나 존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