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암산, 무암산, 와우산, 주성, 대모산, 장암산... 청주 우암산(牛岩山) 처럼 이칭이 많은 곳도 드물게다. 일부 학자들은 이 산을 백제 때 상당(上黨)의 고지로도 추정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보면 2천년 전 백제 다루왕(多婁王)은 낭자곡을 개척하면서 신라왕을 만나고 싶어 했다. 청주 역사시대를 연 낭자곡의 고지가 정말 우암산 계곡였을까.

목암산이란 이름은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하나였던 목은(牧隱) 이색과의 인연설을 담고 있다. 목은이 누명을 쓰고 청주 감영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홍수가 나 감옥을 휩쓸자 목은은 압각수에 올라가 겨우 몸을 보존한다. 그때 중앙정부에서 하늘의 뜻이라고 여겨 목은을 풀어줬는데 그가 우암산에 은거하면서 목암산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와우산은 소가 누운 형상에 빗대 붙여진 것이며 주성(舟城)이란 별칭은 술재(戌城)가 변하여 작명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말 ‘술’의 한자 표기를 주(酒), 주(舟)로 차자한 것이다. 사직동 방향에서 우암산을 바라보면 흡사 배 형상을 하고 있다. 배가 가기위해 서는 돛이 있어야 한다는 술자의 말에 따라 그 중심에 용두사를 창건하고 높다란 철당간을 세웠다는 것이다.

우암산에는 능선을 따라 토석을 섞어 견고하게 쌓은 삼중(三重)의 토성이 존재한다. 학계는 성의 초축(初築) 시기를 백제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의 청주향교 당선산 외록(外麓)을 두른 ‘나성’은 일부구간만 흔적이 남아있다. 청주 서원경성을 구축할 당시 본래 이중성이었던 우암산토성에 붙여 읍민을 보호하기 위해 나성을 쌓은 것인가.

필자는 지난 70년대 중반, 화가 모씨로 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우암산 절터에서 신라시대 와당이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급히 그의 집으로 달려갔다. 방문에 들어서자 필자는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바로 경주 왕궁지나 폐사지에서만 볼 수 있는 정연한 보상화문(寶相華文) 와당이 여러 점 서재에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던 것이다.

이 와당들은 우암산성 안 목우사(牧牛寺)터로 전해지고 있는 건물지에서 찾아진 것이라고 했다. 보상화문 와당은 기와의 색깔이나 문양등으로 보아 완전 통일 신라계였으며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 같은 와당을 만들어 건축물에 사용했다면 우암산성은 통일신라 서원경 치지(治址)가 아닐까? 필자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필자도 와당이 발견 됐다는 목우사지를 답사하게 된다. 그때 목우사터에 집을 짓고 살았던 윤모씨로 부터 몇 점의 와당 조각을 선물로 받았으며 이는 정씨가 가지고 있던 와당과 같은 것이었다. 필자는 우암산 토성이 백제시대 초축(初築) 됐지만 통일신라이후 신라인들에 의해 중요 건물이 지어지고 찬란한 문화를 이룩하며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암산성 서편 성벽너머에 있는 용화사 뒤편에서도 고대의 연화대좌와 아름다운 와당들이 찾아졌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막새였다. 이들 자료는 우암산 토성 주변이 과거 불교유적의 보고(寶庫)였음을 증명하는 것들이다.

서원경성 고지(故址)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지금의 상당산성일대로 보는 측도 있으며 우암산토성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청주고읍성지를 서원경 치지로 보는 의견도 있다. 상당산성 공남문 아래 경작지서는 ‘사탁부속장지역(沙啄部屬長池馹)’ 이라는 고 명문기와가 찾아졌다. 공남문은 바로 통일신라의 ‘장지역’이 자리 잡았던 곳이 확인된 것이다. 이는 신문왕대 서원경 치소를 밝히는 가장 정확한 유물이다.

신라통일 직후(685AD 신문왕대) 상당산성에서 웅거하던 신라지배계급이 정세가 안정되자 지금의 우암산과 나성지로 옮겨온 것이 아닐까. 그리고 통일신라 전성기에 와서는 평지인 무심천변에 청주 읍성을 구축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원경은 신라 서역(西域)의 행정수부로 백제왕도였던 웅진과 부여까지 아우르는 중요 행정치지였다. 왜 신라 경주 지배자들은 웅진이나 부여를 소경으로 삼지 않고 청주를 더욱 중요시한 것일까.

청주시는 학계에 의뢰하여 우암산성내 유적을 발굴한다고 한다. 청주 고대사의 신비가 새롭게 밝혀졌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