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4백년 전 백제 최후의 날. 나당연합군에 의해 왕도 부여가 점령되자 의자왕은 공주 공산성으로 피신한다. 그러나 이 성에서 의자왕은 10일 만에 항복했다. 왕은 결전을 포기하고 왜 쉽게 무너진 것일까. 사실 공산성의 항복은 백제다운 처사가 아니어서 역사의 미스테리로 남은 부분이었다,

삼국사기에는 공산성 항복사실에 대한 구체적 기록이 없다. 그래서 의자왕이 대세가 기울어진 것으로 판단, 왕자들과 궁인들을 데리고 나당연합군에 항복한 것으로 상정해 왔다. 그러나 의자왕의 항복은 자신이 의지가 아닌 성을 지키고 있던 방령(防領) 예진(혹은 禰植)이 의자왕을 위협하여 백기를 들게 한 것이었다.

2010년 중국 시안(西安)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발견이 있었다. 바로 백기를 들게 한 배신자 예진의 무덤이 발견된 것이다. 무덤에서 땅에 묻혀있던 그의 비석이 찾아짐으로써 숨겨져 있던 백제 멸망사의 한 페이지가 기적적으로 복원되었던 것이다.

공산성, 즉 웅진(熊津)은 백제가 한성에서 고구려의 침공으로 위례성이 불타자 피신해 온 두 번째 왕도이다. 그러면 문주왕이 내려오기 전 공산성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일부 학자들은 문주왕의 남하를 피해 익산으로가 건마국(乾馬國)을 세운 세력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실지로 마한 세력을 축출한 것인가, 아니면 주변 마한세력의 도움으로 웅진에서 복국 한 것일까.

웅진에는 곰에 얽힌 찡한 전설이 내려온다. 강가에 살고 있던 한 나무꾼과 암곰의 비극적 사연을 담은 것이다. 암곰이 나무꾼을 납치하여 굴속에 살았는데 나중에 아기를 둘이나 낳고도 나무꾼은 도망을 간다는 것이다. 곰은 나무꾼을 애처롭게 부르나 무정하게 강을 건너가고 말았다. 곰은 그만 자식들과 함께 강물에 빠져 죽는다.

삼국유사에 보이는 환웅의 설화처럼 인간과 곰의 혼인을 담은 것이다. 왜 이런 얘기가 웅진의 설화로 자리 잡았을까. 이 설화를 만든 장본인들이 바로 멀리 북방에서 내려온 북부여의 지배계급이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중국의 각종 사서(史書)에도 웅진성은 고마성, 거발성, 대두성으로 표기 된다. 언어학자들은 곰의 한문 표기는 ‘熊, 公, 錦’이며 ‘고마’ ‘곰’을 음차(音借) 또는 훈차표기(訓借表記)한 것이라고 한다. 모두가 큰 마을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금강(錦江)과 공주(公州) 공산성(公山城)이란 이름이 여기에서 출현됐다고 보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백제를 ’구다라(くだら)’고 부른다. ‘구다라’는 고대 일본에서의 원조 한류(韓流)이며 아스카문화의 성지이자 동경의 땅이었다. 그들은 매년 수많은 유학생과 승려를 보내 구다라의 학문과 각종 기술을 배웠다.

옛 부터 일본에 전해내려 오는 속어에 ‘구다라나이(くだらない)’란 말이 있다. ‘바로 백제가 없다’라는 뜻으로 ‘백제 것이 아니면 보잘 것 없다’는 라는 말이다. 그만큼 백제 것이 우수하다는 데서 생긴 속어다.

수백 년 일본인들이 동경해온 구다라. 그러면 이 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웅진의 ‘고마나루’ 혹은 고마(곰·熊)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일본서기에는 웅진을 구마나리성(久麻怒利城)이라고 기록한다. 구마(久麻)는 일본어의 곰(熊)이다.

백제는 웅진에서 5대 64년 사직을 이어오면서 중흥의 토대를 마련한다. 이 시기 영주는 동성왕과 무령왕이었다. 동성왕은 웅진까지 침공한 고구려에 대응하기 위해 신라와 나제동맹을 맺고 신라왕녀를 자신의 왕비로 삼기도 한다.

무령왕은 즉위 전 일본 궁성에 살았으나 동성왕 사후 일본에서 급거 귀국, 반란군을 진압한 후 백제의 문예부흥을 이룩한다. 일본인들이 공주를 많이 찾는 이유도 바로 무령왕에 대한 그들의 숭배정신 때문이다.

천년 백제 왕성 공산성의 성곽 일부가 크게 무너지고 있는데도 당국은 그 원인을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공산성은 곧 유네스코세계유산등재를 앞두고 있는데 자칫 실기를 우려하는 시각이 높다. 성곽이 무너지는 원인을 빨리 파악하여 천년 고대 백제 왕성이 더 파괴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