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초 통계청에 의하면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지난해 경조사 건수는 2000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음에도 가구당 경조사비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계층별로 상위 40%만 지출이 늘어나고 나머지 중하위 계층에서는 경조사비가 모두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갈수록 중하위층의 주머니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으로 볼때 누구나 경조비에 부담을 느끼기 마련이다. 한달에 40~50만원 지출되는 경우도 있다. 경조사비 인상에는 체면과 맞물려 브레이크가 없다. 문제는 4년전부터 오만원권이 나오면서부터다. 3만원, 5만원에서 단박에 10만원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한 달 용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니 짐이 될 수밖에 없다. 모르는 채 할 수도 없는 게 그것이다. 경조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할 경우 죄인이 된 기분이다. 품앗이 성격도 강한 만큼 성의를 표시하는 것이 마땅하다. 

물론 청첩장을 주고받고 성의껏 축의금을 내는 것은 상부상조의 정신이 깃든 아름다운 풍속이다. 경조사를 치르느라 목돈이 아쉬울 때 서로 도와주는 계(契)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초면이거나 잘 모르는 사람한테 청첩장을 받았을 때 '축의금 고지서'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현실이다.

경조사 소식을 접하면 보통의 직장인들은 두 가지 번민에 빠지게 된다. 직접가 볼 것이냐 아니냐와 축의금 또는 조의금을 얼마로 할 것이냐다. 각자의 일상이 바쁘다 보니 연락을 받을 때마다 가볼 수도 없고, 경조비 금액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꼭 다녀와야 할 곳을 빠뜨리면 아무래도 마음이 찜짐하다. 한국에서의 인적 네트워크 관리는 사실상 경조사 관리나 다름없다. 경조사로 인해 소원된 사이도 금방 화해되기도 한다. 그래서 경조사 관계는 상당히 민감한 부분이다.

지난 2일 청주병원 장례예식장에서 이상광(하원정명리학회 이사장), 이상범(르네상스투자자문 대표)모친상이 있었다. 이들 형제는 내수 시골 출신으로 효자로 정평이 나 있다. 이번에 작고한 모친 이영자씨는 2006년 지병으로 쓰러져 식사는 물론 말조차 하지 못해 7년간 병원신세를 졌다. ‘긴병에 효자없다’는 말이 당연히 되는 게 현실이다. 모친은 효자 덕분에 92세로 생을 마감했다. 슬하에 3남 4녀을 둔 다복한 가정이다. 3일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장에는 연일 조문객들로 북적댔다. 여느 초상집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조문객들에 부의금을 받지 않아 미담이 되고 있다. 접수대에는 ‘조문 감사합니다. 고인의 뜻에 따라 조의금을 정중히 사양합니다’ 문구가 눈에 띈다. 부의금 봉투를 미리 챙겨간 조문객들은 “보통 사람들이 부의금을 받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며 은근히 반기는 모습이다. 경조사비를 받지 않는 예는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 재벌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부의금을 받아 자선단체나 불우이웃에 기탁하는 미담은 종종 있어도 보통 사람이 접수조차 하지 않은 사례는 드문일이다.

'얼굴없는 천사'로 이웃돕기에도 솔선

수천만 원이 넘는 장례비를 조문객들에 부의금을 받지 않고 상을 치른다는 건 쉽지 않은 판단이다. 이들 형제는 평소 경조사에도 적극 참여하곤 했다. 하지만 자신의 모친상 때는 경조비를 받지 않고 조출하게 치렀다. 이번 이씨 형제의 처신이 신선하고 아름답게 여겨진다. 특히 동생 이상범씨는 10여년 전에 모방송국에 무기명으로 가뭄성금 3억원을 기탁해 ‘얼굴없는 천사’로 방영된 장본인이기도 하다. 수년째 고향 모교와 이웃돕기에도  솔선해오고 있다.

이제 경조사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일본이나 미국처럼 지인들만 초청해 조촐하게 치러야 한다. 상호부조적인 장점도 적지 않은 우리의 경조사 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진심으로 애도하는 조문이 부의금과 청첩장이 부담으로 느껴지도록 하거나 노후 은퇴자의 정신적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문화는 이제 바꿔야 할 때가 됐다. 이씨 상가처럼 보통사람들이 애사때 부의금을 받지 않는 문화가 점차 정착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