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산 기슭에
이미 죽어 다 썩어난 소나무 한 그루
그 옆 물박달나무에 온몸 기대고 있다
황조롱이 한 마리 날아와
이곳 저곳 틈을 헤집어 먹이를 찾다가는
어디론가 다시 후루룩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나무는 죽고 썩어서
여기저기 깨지고 허물어지면서
서서히 산이 되고 있다
바람으로 풀리고 있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그게 아니다
이 산이 다시 소나무 되어
저 먼 산이 다시 소나무가 되어
죽을 대로 죽고 썩을 대로 썩은 소나무가 되어
그 물박달나무에 기대어 있다
온 산의 고요를 모두
옷 입고 있다

 
▶충북 보은 출생
▶1983년 『월간문학』
▶시집『아버지는 두릅나무 새순만 따고』『분리된 꿈』
『속초행』『하늘뜨락』
▶현 청주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