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고(故) 이병철회장은 신입사원 면접 때 유명한 관상가를 옆자리에 앉혔다. 당대 유명 역술인으로는 백운학, 우종학씨 등이었는데 이들의 조언에 따라 최종 합격자를 선발했다고 한다. 젊은 청년이 장차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관상으로 평가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관상학은 신라 선덕여왕 때 당나라에 유학했던 승려들에 의해 전래됐다는 설이 있다. 계통은 달마(達磨)의 상법(相法)이 원류라고 한다. 관상학은 천수백년동안 위로는 임금으로 부터 사대부가는 물론 백성들에게 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임금들은 전시(殿試)를 통해 최종 합격한 수재들의 장원(壯元)을 결정할 때도 관상쟁이를 들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급제자의 얼굴을 통해 혹 모역자(謀逆者)의 상이 아닌가를 살폈다는 것이다.

고려시대 말엽에 혜징(惠澄)이라는 승려가 관상가로 유명했다. 어느 날 이성계의 얼굴을 보고는 ‘장래 군왕이 될 상’이라고 귀띔을 하며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이태조는 훗날 군왕이 되었는데 혜징은 이태조의 긴(長) 양귀를 보고 군왕의 풍모를 점쳤다는 것이다.

칠삭둥이 한명회를 보고 재상이 될 상이라고 평가한 이는 영통사의 도승이다. 한씨보응록(韓氏報應錄)에 보면 도승은 한명회를 보고 ‘장래 재상이 될 상’이라고 말했다. 한명회는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으면서 무려 4번이나 공신록에 들고 최고의 관직인 영의정을 역임했다. 세조와 사돈지간을 맺고도 예종과 성종의 장인이 되었으니 최고의 관상을 가진 행운아였던 셈이다.

또 으뜸가는 관상이라면 백사(白沙) 이항복의 절친 한음(漢陰) 이덕형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7세에 당대 역학자인 토정(土亭) 이지함(李之함)을 만났다. 관상을 많이 연구한 토정은 조카인 이산해(후에 영의정)에게 소년이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것을 점치면서 사위로 삼으라고 권했다. 한음은 조선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인 31세에 예조참판과 대제학을 겸임하고 훗날 영상에 오르는 등 장인의 지위를 넘나든다.

그러나 관상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성인 공자는 최악의 관상을 지녔다는 기록이 있다. 노나라에서 관상을 잘 보는 고포자경이란 사람은 공자를 만난 후 ‘멀리서 보면 지친 초상집 개’와 같다고 평했다. 그는 “평생 천하의 선비들을 봤지만 이처럼 이상한 관상은 처음"이라고 혀를 찼다고 한다.

우암 송시열 선생도 관상은 그리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암은 젊은 시절 회덕-논산을 오가며 서계(西溪) 이득윤(李得胤)과 함께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이때 관상이 좋지 않다고 스승으로부터 소외당했다는 일화가 전하며 스승은 얼굴이 좋은 서계를 편애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러나 우암은 노론의 영수가 되고 유학의 대가로 숭앙을 받는 인물이 되었다.

다산 정약용은 관상에 너무 집착하는 당시 세태를 비판한다. 다산논총 ‘상론(相論)’을 보자. “사서인(士庶人)이 상(相)을 믿으면 직업을 잃게 되고, 경사부(卿士夫)가 상을 믿으면 그 친구를 잃으며, 임금이 상을 믿으면 신하를 잃는다”
다산은 또 이렇게 말한다. “서당에 다니는 무리는 그 상이 아름답고, 시장의 무리는 그 상이 검고, 목동(牧童)의 무리는 그 상이 산란(散亂)하고, 뱃사공이나 마부 같은 무리는 그 상이 사납고 약빠르다. 대체로 그 익히는 것이 오래됨으로써 그 성품이 날로 옮겨가게 되니, 그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이 겉으로 나타나서 상이 이로 인하여 변하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 극장가에 ‘관상’이란 영화가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1천만명 돌파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왜 6백년 전 스토리를 담은 ‘관상’에 이처럼 많은 관객들이 열광하는 것일까. ‘나는 파도만 봤지 바람을 보지 못했다.’는 주인공 송광호의 마지막 명대사가 이 영화의 백미로 와 닿는다.

‘상은 스스로 만든다’는 말이 있다. 다산의 논지처럼 관상은 지금 어떻게 인생을 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심상(心相)’의 거울이 아닐까. 좋은 관상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세상사를 헤쳐 나가고 인간관계를 능력 있게 관리해 나가는 지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