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봉감별곡(彩鳳感別曲)’은 개화기인 1910년대 읽혀진 소설이다. 말단 양반 김진사가 벼슬자리를 얻기 위해 딸에게 허판서의 첩으로 갈 것을 은근히 권유하는 대목이 나온다.

“아가 너 재상의 소실이 좋으냐? 여염집 부인이 좋으냐?” “차라리 닭의 입이 될 지언정 소의 뒤가 가 되는 게 원이 아니올시다” “허허 그 자식... 남의 별실(소실) 구경 못해 그런 소릴 한다마는 그런 호강 없다”(하략)

부자나 고관대작의 첩으로 들어가면 여자의 인생이 달라졌던 모양이다. 부유해짐은 물론 첩의 친정식구들도 호의호식하며 살았다. 그래서 몰락한 양반의 딸로 사느니 보다는 고관의 첩실로 들어가 팔자를 고쳐 보겠다는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채봉감별곡은 당시 고위관리들의 축첩과 딸 성상납도 서슴지 않는 무치(無恥)의 세태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유교사회는 법으로 일부다처제를 허용한 나라다. 경국대전 예전봉사조(禮典奉祀條)에 축첩제도를 공인하고 처는 2등, 첩은 4등의 지위를 인정했다. 첩을 별가(別家), 소실(小室) , 소가(小家) 또는 측실(側室)로 불리었으며 이는 일제강점기 까지 그 유풍이 이어졌다. 그러나 양반집 여자를 첩으로 삼는 일은 사실상 법으로 금지 했다. 성종대 왕실의 사위 하성위(河城尉) 정현조(鄭顯祖)등이 공주가 죽자 사족의 딸을 첩으로 삼았는데 임금은 이들을 취조토록 명한다. 이들이 사실을 아뢰자 임금은 이렇게 전교한다.  

“하성위 등은 심히 옳지 못하다. 그러나 양가(兩家)에서 이미 첩으로서 혼인을 하였으니, 마땅히 첩으로 시행(施行)토록 하되, 금후로는 부마(駙馬) 및 조관(朝官)이 감히 사족의 딸로써 첩을 삼는 자는, 법으로써 엄하게 다스릴 것이다.”

고려 말 권신 지윤(池奫)은 재력 있는 첩이 무려 30명이나 되었다. 벼슬자리를 팔아 많은 재산을 모았다고 하며 한동안 부귀와 권세를 누렸다. 그러나 권불십년, 지윤은 얼마못가 최영장군에게 죽음을 당하고 집안은 몰락한다. 조선 태종 때 전서(典書)벼슬을 한 박저생이란 인물이 있었다. 풍류를 좋아하여 기생과 놀아나다 사헌부의 탄핵으로 파직된다. 그런데 서울 집에 돌아와서도 계집종을 첩으로 삼자 아내가 질투했다. 박저생은 아내에게 적쇠를 휘두른 죄로 곤장을 맞고 귀양을 갔다.

명재승 황희(黃喜)는 인품이 훌륭했으나 여종을 첩으로 삼아 아들 까지 낳아 한때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장성하여 부친 덕으로 궁궐에 들어가 일을 보게 됐는데 궁궐에 보관해 둔 금잔과 금띠를 훔치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 황희 정승은 크게 노하여 서자임을 부인하였으며 아들은 일생을 성을 바꿔 살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조선 세종때 황효원은 문장에 뛰어났으나 여색을 너무 밝혔다. 우찬성에다 대사헌, 이조참판, 관찰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나 수뢰에도 일가견이 있어 ‘화가옹’(貨家翁)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고 한다. 두 임금이 승하한 후 성종 대 이르러 결국 탄핵을 받았다.

비록 축첩은 허용했다고 하나 선비들은 사류가 여색(女色)을 탐하는 풍토를 무치(無恥)라고 비판한다. 단양군수로 있을 때 사랑했던 기생 두향을 첩실로 들이지 않고 죽을 때까지 끝내 만나지 않았던 학자 퇴계가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자기관리에 엄격했기 때문이다.

부패한 나라일수록 권력을 가진 이들의 축재와 축첩이 문제가 된다. 보도를 보면 전 충칭시 당서기 보시라이(薄熙來)사건이 말하듯 중국은 지금 고위관리나 재력가들의 축첩문제가 언론에 자주 거론되고 있다. 부패지수가 높은 한국사회도 비밀리 숨겨둔 내연녀를 두고 혼외자식을 키우는 부유층과 고위공직자들이 많은 것은 아닌지.

국민들은 법률을 다루는 공직자는 축첩 문제 등 공사생활이 깨끗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래야 공정한 법의 잣대를 들이 댈 수 있기 때문이다. 채동욱 검찰총장 내연녀 진실공방이 빨리 풀려 검찰 기강이 제자리를 찾고 정치적 갈등도 수습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