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소선(玉簫仙)’은 조선 숙종대 임방이 지은 고대소설. 양반자제와 기생이란 신분을 초월한 아름다운 사랑을 드라마틱하게 그렸다. 여주인공의 이름은 ‘자란’으로 용모가 빼어난 평양 소녀기생이었다. 고전의 백미 춘향전이나 영영전 등 여러 소설처럼 옥소선도 ‘백년해로’를 에필로그로 삼는다. 부부가 오래도록 해로하는 것이 민중들의 소망으로 자리 잡았기에 그렇다.

‘백년해로’라는 사자성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바로 시경(詩經) 의 ‘격고(擊鼓)’에서 찾아진다. 한 병사가 고향을 떠나 멀고도 먼 이역(異域) 죽음의 전장에서 아내를 그리워하며 읊은 애절한 노래 속에 등장한다.

“죽거나 살거나 함께 고생하자던(死生契闊) /당신과는 굳게 언약하였지(與子成說) /섬섬옥수 고운 손 힘주어 잡고(執子之手) /단둘이 오순도순 백년해로 하자고(與子偕老)”

옛 사람들은 백이라는 숫자를 ‘많다’는 뜻으로도 썼다고 한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오래 함께 사는 ‘해로’의 개념으로 사용한 것 같다. ‘살아서는 같은 방을 쓰고 (生則同室), 죽어서도 같은 무덤 속 에 들어간다(死則同穴)’는 말도 백년해로와 같은 뜻으로 회자 돼 왔다. 그러나 수명이 짧았던 옛 사람들이 백년해로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다. 61세를 넘기면 화갑(華甲.花甲) 이라 하여 축수하며 잔치를 벌였다. 오래 살았으니 빛나는 나이란 뜻이다.

송강(松江) 정철이 길을 가다 우뚝 선 돌부처를 만났다. 천년을 죽지 않고 사는 돌부처의 운명을 가인(歌人)은 부러워 한 것인가. 그는 다음과 같은 절구를 짓는다. 그러나 송강은 지병 때문인지 50대 중반에 세상을 떠나 사랑하는 부인과 해로의 연을 누리지 못했다.

“길 위에 두 돌부처 벗고 굶고 마주서서 /바람 비 눈서리를 맞도록 맞을망정 /인간에 이별을 모르니 그를 부러워하노라.”

제주도로 귀양을 간 추사(秋史)는 서울에 떨어져 있던 부인 예안이씨(禮安李氏)가 세상을 떠나자 임종도 못한다. 추사는 ‘백년해로’하지 못한 운명을 한탄하여 다음과 같은 도망시(悼亡詩)를 지어 아내의 영전에 바쳤다.

“중신할매를 두고 명부에 소송을 해서라도 /다음 생에는 남편과 아내를 바꾸어 태어나 /천리 밖에서 나는 죽고 님은 살아있어 /님으로 하여금 지금 내 마음의 슬픔을 알게 하리라”

백년해로가 인간 모두의 소망이긴 하지만 지금 이 시대 많은 노인들에게 ‘불우한 해로’로 받아들여진다. 오래 사는 것이 힘든 자식들에겐 짐이 되고, 경제력 없는 노인들의 경우 병든 배우자를 보살피는 일도 쉽지 않다. 그래서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노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한 자료를 보면 노인자살 사건이 최근 4년 새 1만8000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얼마 전 경북 청송군에 사는 87세의 할아버지가 80대 부인을 목 졸라 살해하고 죽음을 선택한 사건이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할아버지는 치매를 앓던 부인을 4년간 정성껏 간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초에도 서울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보건복지부 등 정부 기관 조사에 따르면 자살 이유로는 경제적 어려움, 건강 등 신체 질환 문제, 외로움, 가정불화 등이라는 것이다.

백년해로가 불우한 운명으로 여겨지는 시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줄 대안은 없을까. 얼마 전 모TV에서 농촌에 살고 있는 80대 할머니 여러 명이 일상을 통해 서로 돕고 음식을 나누며 즐겁게 사는 모습이 방영된 적이 있다.

불우한 처지의 노인들이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작은 일과 봉사를 통해 즐겁게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이끄는 ‘실버라이프 코칭’ 등 제도적 안전망이 조속히 확산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