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도시 대역사가 한창인 세종특별자치시에 ‘당산(堂山)’이 있다. 행복청 건설현장에서 조치원으로 통하는 국도 상 연기면 소재지 동쪽에 위치한 고도 157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당산 기슭에는 연기향교가 자리 잡고 있으며 산 정상에는 삼국시대 토성의 유지가 있다. 토성은 전문가가 아니면 쉽게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퇴락했으나 천 수백년 역사를 지켜온 흔적들이 곳곳에 찾아진다.

이 작은 토성이 세종시의 전신인 연기(燕岐)의 뿌리다. 천 수백년 이곳을 지켜온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최근 세종시를 건설하고 있는 주무관청은 물론 세종시 관계자들도 이 토성에 대한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왜 당산이 세종시 역사에서 중요한가. 연기군의 백제시대 이름은 두잉지현((豆仍只縣). 두잉지는 순 우리말 표현으로 이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갈래다. 금강과 미호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두잉지의 백제시대 토착세력은 연씨(燕氏)와 전씨(全氏)로 이들은 한성에서 공주로 천도한 백제왕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삼국사기 기록에 등장하는 연신(燕信)과 연돌(燕突)은 대표적이며 전씨들은 훗날 이 지역을 중심으로 복국운동을 주도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백제 멸망이후 3년 동안 두잉지는 지금의 청양(정산/두량윤), 서천(우두성), 예산(임존성). 회덕(우술성), 유성(내사지성)등과 더불어 복국운동의 거점이 되었다. 남쪽에서 북상하는 신라군을 저지하는 매우 중요한 길목으로 큰 기능을 담당을 것으로 상정되고 있다. 연기군에서 향토사를 전공한 일부 학자 가운데는 두잉지와 첫 자 ‘두‘를 ’두루 주(周)‘로 해석, 전의 운주산성을 항쟁의 중심 성인 ’주류성(周留城)‘으로 비정한 사례까지 있다. 또 고려 충렬왕대에는 남하한 합단족(哈丹族)과 싸워 이를 물리친 전승유적의 하나로 비정하기도 한다.

30년 전 필자는 당산을 답사할 때 깨진 명문기와 한 장을 찾은 바 있다. 여말∼조선 초기 와편(瓦片)으로 생각되는데 기와 외면에는 ‘전기(全岐)’라는 글씨가 뚜렷했던 것이다. 두잉지∼연기∼전기로 이어진 조치원 역사의 뿌리를 확인하는 자료였다.

전의(全義) 비암사(碑庵寺)에서 발견 된 ‘계유명전씨(癸酉銘全氏) 아미타삼존불비상(阿彌陀三尊佛碑像)’은 이곳의 토착 세력인 전씨들의 위상을 알려주는 중요유물이다. 네 면에 글이 새겨져 있는데 내용은 ‘계유년(673)에 신라에 귀속한 50인이 국왕과 대신(大臣), 세상을 떠난 부모를 위하여 아미타상, 관음상, 대세지상을 만든다’는 전(全)씨 일가의 발원문이다. 지난 1960년 이 유물이 발견 됐을 때 이를 조사한 고 황수영박사(전 동국대총장)는 너무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전한다.

사가들은 처절했던 백제 복국 의지는 신라에 대한 문화적우월성과 자존의 발로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만약 백제가 망하지 않고 그들에 의해 삼국이 통일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일본을 개화시킨 높은 수준의 기술력, 문화력이 한반도 판도를 바꿔 놓았을 것으로 상정한다. 그래서 백제 정신의 부활을 시대의 담론으로 삼는 역사학자들도 있다. 민족번영을 위한 탁월한 시대정신으로 계승해 보자는 것이다.

세종시의 뿌리를 백제라고 말하는 근거는 바로 백제의 고토 두잉지에 대역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교과서에 까지 실린 석장리 구석기 유적이 있고 백제 왕도였던 공주가 있다. 일본인에게 사마왕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무령왕의 능침이 이곳에 있다. 무령왕은 부친(일설에는 동생으로 봄)인 동성왕이 시해 되자 일본에서 급거 귀국, 내란을 수습하여 백제를 중흥시킨 영주다.

그리고 세종시 일대 주변에는 숱한 백제 고분과 성곽 등 유적이 산재해 있으며 세종시 영역인 충북 청원군 부강면과 인근 청주시내 부모, 우암산에 이르기까지 모두 백제의 향기가 살아있는 유적들이 즐비하다. 부모산에서는 백제시대 아름다운 연화문기와와 인각와(印刻瓦)가 찾아져 이 성이 두잉지와 왕도 웅진을 보호했던 강력한 백제전사들이 상주했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지금 세종시 건설현장에 가면 ‘두잉지’의 역사가 없고 백제 존재가 빈곤하다. 그나마 복원된 한솔동 고분역사공원 정도가 체면을 살리고 있다. 세계적 도시를 지향하기 위한 위대한 역사, 백제 잔영을 부각시키는 지혜를 모아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