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봄, 청원 부강초 새내기 교사로 첫 발을 뗀지 엊그제 같은 데 단재교육연수원장(유아교육진흥원장 겸임)을 끝으로 43년 교직에서 물러간다. 교단 일기장 마다 ‘내가 나를 너무 모른 바보’인 채, 부끄러운 얼룩만 빼곡해 몸살이 먼저 번진다. 그 중, 필자의 시 ‘조롱박’ 전문은 배움과 가르침을 공식화하고 있다. /조롱박 넝쿨이 줄타기 한다. /돌돌돌 더위를 찧어 /아래 한번 안보고 꿈을 넌다 /‘어쩌려나’ 고개도 맨날맨날 따라 올라 /더 젖히기 힘들 때 /하나 둘, 빚어내는 항아리 /그래, 옹기종기한 삶보며 /조롱박이라 작명했다지. 교육이란 기다림의 풀무질임을 이제 와서야 알 것 같은 시력 잃은 먼산바라기다.

휴먼 플러스

지난 고사리 손길 하나하나에 대한 소중함이 일고 요즘 들어 부쩍 공교육이라는 엄청난 굴레 속에서 작은 실천의 두려움이 짙어옴을 어쩌랴. 모 방송에서 ‘인간극장’이 높은 시청률로 방영되고 있다. 대역과 본인의 교차 출연으로 어둠의 터널을 슬기롭게 극복한 인간승리여서 가난하지만 청순한 삶에 감동하며 박수를 보낼 때가 많다. 장면 장면과 함께 어렷을적 텃밭에 심은 햇감자를 반 친구들과 땀 흘려 캐내 보릿짚대로 지펴 쪄먹던 그리움도 겹쳐져 비밀처럼 동심에 빠진다.

근래, 교육에 대한 만만찮은 얘기들이 연일 특집으로 메워지고 도전의 격앙은 교직을 이어오는 동안 낯설지 않은 추임새였다. 분명 변해야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추상적인 모호성에 사로잡힌 채 몸살을 해왔다. 공자가 나이 마흔에 비로소 얻었다는 지족(知足)과 지지(知止)의 의미도 예사롭지 않게 그려진다. 두고두고 하늘이 얼마나 높은 건지, 땅은 얼마나 깊은 지 넝쿨을 붙들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조롱박처럼 분명 ‘스승은 제자 가슴에 영혼을 심는 사람’이다. 유도(柔道)에서 처음 배우는 넘어지기 과정처럼 상대를 넘어뜨릴 생각보다 스스로 넘어지기 연습이 먼저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걱정의 소리가 연일 봇물을 이룬다. ‘넘어져도 괜찮아, 일어서면 되지’란 한 마디에 왜 그렇게 인색했는지 모르겠다. ‘너 때문에’가 아닌 ‘네가 있어서 …’ 얼마나 용기를 부추길 따끈한 언어인가? 좋은 선생님의 최고 명약이다. 사람다운 사람을 밥먹듯 이야기하면서 어른 잣대로 아이를 몰아세워 도대체 눈높이가 뭔지 혼동하거나 감정적으로 야단했던 가르침의 흉내, 참으로 부끄러운 자화상을 반성한다. 초심이 뭔가?

아이들이 어른스러워야 박수를 치고 꼼짝 않고 앉았을 때 웃음을 준 부끄러움도 있다. 바로, 오류를 수용해 스스로 터득하는 솔직함을 교사가 먼저 포기한 실수였다. '선생님 우리도 아파요.'란 엄살 섞인 꼴찌들의 통쾌한 반란도 공감하기 보다 빨리 매듭짓기 위해 동동거린다든지, 뒤따라 다니며 잔소리를 쏟으니 가능한 숨기는 것에 익숙했다. 결국 실패의 단면이다. 이렇듯 교육의 어울림도 따뜻한 가슴이 통하면 구태여 10계명을 늘리지 않아도 진화는 거듭된다. 21세기 주역으로 우뚝 설 어린이들이 소박한 꿈을 가지고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세계교육 및 학교 교육에 대한 흐름과 함께 무한한 혁신의 선택권이 폭넓게 보장된 성숙한 수준을 주문해 본다.

맞장구를 쳐줄 때 소리결 고운 거문고처럼, 그동안 비틀거리고 넘어질 때마다 부축하고 일으켜 아름다운 문양을 채워준 살가운 인연은 참으로 큰 횡재였다. 이제, 여운의 아련한 끝동에서 작은 키인 채송화로 앉아 가장 낯설었던 자신과 친숙해지련다. 모든 교육가족께 감사함과 영광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