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애주가들은 술을 가리켜 망우물(忘憂物)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애연가였던 고(故) 공초(空超) 오상순 시인은 담배를 ‘망우초(忘憂草)’라고 이름 지었다. 세상의 근심 걱정을 잊게 해주는 풀이란 뜻이다. 그가 얼마나 담배를 사랑했는지 공초라는 별호는 바로 ‘꽁초’에 비유한 것으로 친구들이 붙여준 것이다.

공초는 ‘애연송’ '애연소서(愛煙小敍)'니 하는 담배에 관한 수필을 많이 남겼는데 모두 명문이다. 그는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글이 ‘금연’이란 두 글자라고 했다.

공초는 하루에 담배를 무려 180 개비를 태웠다는 일화가 있다. 매일 9갑씩을 피웠다는 계산이다. 담배가 호주머니에 있으면 힘이 생기고 부자처럼 든든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쪽저쪽 호주머니에 담배가 그득하면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부자지. 그런데 호주머니 담배가 달랑달랑하면 나보다 가난한 사람이 있을까 싶어”라고 술회했다는 글이 있다.

담배는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보면 광해군 때 대마도에서 수입됐다는 기록이 있다. 처음 담배는 남령초(南靈草)라 불렸으며 한약재로 쓰였다. 동의보감에 보면 "연초는 맵고 열이 있어 장담, 한독, 풍습을 몰아내며 살충 효과가 있다. 연초는 양성으로 쉽게 이행하고 퍼지므로 냉한 음식에 체한 데 쓰면 신효하다."는 설명이 나온다.

조선왕조 역대 임금 중 최고 골초는 정조였다고 한다. 정조는 어느 날 어전에서 과거를 치르면서 응시자들에게 시제(試題)로 남령초(南靈草)를 내걸어 선비들을 당황하게 했다는 고사도 있다. 정조는 한때 신하들이 이를 금지해야 한다는 상소를 깡그리 무시 한 적도 있다. 그리고 담배의 효험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참으로 애연군주다운 풍모다.

"물건을 이롭게 사용하고 생활에 윤택한가를 따지면 그 뿐, 왜 유독 담배만 천한 것으로 여기는가. 짐은 수십년간 책을 읽는 고질병에 시달린 데다 왕좌에 오른 뒤 정무에 전념하느라 병이 깊어졌다....백방으로 약을 썼지만, 담배만한 약이 없었다. 불기운으로 한담(寒痰)을 공격하자 막힌 가슴이 절로 사라졌다....“

재미있게도 남령초가 조선에 들어왔을 때는 흡연이 남녀 간이나 반상(班常) 사이에 자유스러웠다. 노인과 소년이 한 방에 앉아 장죽을 물고 담소를 했으며 기생들 사이에는 흡연하는 풍속이 일종의 유행병처럼 됐던 모양이다.

조선 후기 풍속화가 신윤복의 그림 속에 아름다운 젊은 기생이나 소년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발견된다. 간송미술관 소장의 '소년전홍(少年剪紅)은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 장죽을 들고 이웃집 아낙을 유혹하는 그림이다. ‘연당야유도’에서는 장년의 후덕한 고관들 앞에서 긴 담뱃대를 문 기생들의 요염한 자태가 눈길을 끈다.

담배만큼은 귀천 없이 함께 즐겼으나 후대에 오면서 예절이 생겨 노소동락의 개념이 깨진 것 같다. 젊은이가 노인 앞에서 담배를 꼬나물면 버릇없는 녀석으로 치부되고 길거리에서 젊은 여자들이 담배를 무는 모습도 그리 환영받지 못한다.

나폴레옹과 독재자 히틀러는 담배를 증오한 대신 독일 철혈재상(鐵血宰相) 비스마르크는 지독한 애연가였다. “담배를 좋아하지 않는 장군은 명장이 아니다."라고까지 말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영국 수상 처칠은 언제나 시가를 입에 물고 다녔다. 식사시간과 잠자리 외에는 입에서 시가를 뗀 적이 없는 골초중의 골초였다.

한국은 이제 애연가들이 어깨를 펴지 못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담배 피울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식당이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가면 천덕꾸러기가 된다. 앞으로는 충북도내 문화재 혹은 유적지에서 담배를 피우면 과태료를 물게 됐다. 이제는 애연가들을 범죄인처럼 취급하는 경지로 바뀐 셈이다.

개그맨 이주일은 금연을 유언처럼 남기고 세상을 떠났지만 담배가 인간에게 해로운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의학전문가들은 담배연기에 직접 닿는 구강이나 식도, 폐, 그리고 기관지 관련 암은 90% 이상이 흡연 때문이라고 한다. 담배가 이렇게 나쁜 것인데 굳이 피워야하고 과태료를 물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 세상의 근심을 잊게 하는 이름 ‘망우초’가 정말 잊혀 진 전설의 풀로 인식되는 날을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