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신중한 언어를 군자의 덕목으로 삼았다. 성인은 ‘백규(白圭)의 경구’를 실천하는 한 제자에게 형의 딸을 시집보내 사위로 삼게 한 고사가 있다. 주인공인 제자가 반복한 경구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구절이다. “흰 구슬의 티는 오히려 갈 수 있지만 (白圭之玷 尙可磨也), 말의 흠은 어찌 할 수 없네 (斯言之玷 不可爲也)”

제자가 이 경구를 하루 세 번씩 음송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언어에 신중했나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논어에는 말을 경계하라는 구절이 많이 나온다.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행동은 민첩하게 하려고 한다(君子 訥於言而 敏於行)’ ‘군자는 말이 행동보다 앞서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다(君子 恥其言而過其行)’고 가르쳤다.

어느 날 제자 안연이 스승에게 나라 다스리는 법을 질문했다. 그때 공자는 ‘말재주 있는 사람을 멀리하라. 그는 위태롭다’고 답했다. 달변가나 말 많은 사람들을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한 것이 공자였던 것이다.

세치 혀를 잘 못 놀려 화를 입은 것을 “설화(舌禍)’라 한다. 세조대 청년장군 남이. “백두산 돌에 칼을 갈고 두만강 물로 말을 먹인다...”는 호방한 시를 지은 남이도 설화로 죽음을 당한다. 남이는 평소 술을 잘 마셨으며 무인다운 기질로 성격이 과격했다고 한다. 당시 훈구파의 견제도 한몫 했지만 결정적이었던 것은 술이 화근이었다. 무모한 청년장군은 세조가 베푼 주연(酒宴)에서 만취해 그만 말실수를 한 것이다. “요즘 주상께서 구성군(이준)을 지나치게 총애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남이의 이 한마디는 그를 가시처럼 생각했던 이준을 중심으로 한 반대 신진 세력들과 훈구파들에겐 호재였다. 남이는 세조가 승하한 후 예종이 등극하자 역모로 치죄된다. 실록을 보면 병조참지 유자광(柳子光)이 “남이가 궁궐에서 숙직하고 있으면서 혜성이 나타나자 묵은 것을 없애고 새 것을 나타나게 하려는 징조라고 말했습니다“라고 거짓 고변(告變)했던 것이다.

남이는 모반 혐의로 즉시 의금부에 체포되었으며 혹독한 국문을 받자 결국 역모를 시인했다. 형틀에서 주리를 트는 고문을 못 이겨 거짓 시인한 것이다. 그는 사흘 뒤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과 함께 저잣거리에서 사지가 찢겨지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진다.

연산군 때 내시 김처선도 임금에게 간언을 하다 설화로 무참하게 살해 된 고사가 아닌가. 연산의 패륜을 보다 못한 김처선은 ‘노신이 네 분의 임금을 섬겼으나 어느 누구도 전하처럼 음란한 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고 극간을 한다. 이때 화가 난 연산은 활을 가져오게 하여 김처선의 가슴을 향해 쏘았다. 그러나 김처선은 화살을 맞고 피를 흘리면서도 말을 그치지 않았다. “늙고 천한 제가 무엇이 두려워 임금님께 바른 말을 못 하겠습니까?”

연산군은 김치선의 입에서 바른말이 나올 때마다 다리와 팔을 하나씩 잘랐다. 숨이 끊어지자 시체를 호랑이 우리에 던졌다고 한다. 가족들은 비참하게 죽은 치선의 시신마저 수습하지 못했다.

당나라 때 풍도(馮道)는 명재상이 있었다. 그는 '입은 화의 문이며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는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재상 풍도는 입조심을 한 덕으로 당나라가 망한 뒤에도 여러 왕조에서 기용되어 부귀와 장수를 누렸다는 기록이 있다.

최근 민주당 몇몇 의원들이 막말을 하여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고, 지도부가 말조심을 당부했다는 보도가 눈길을 끈다. 선거 때마다 막말로 국민들의 지지를 잃은 사례가 적지 않은데 이 같은 설화가 계속 양산되는 것일까. 정치인이기에 앞서 국민들에게 존경 받을 수 있는 ‘말을 아끼는 군자의 덕목’을 실천하는 품격 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성서에서도 ‘세치 혀를 조심하라’는 경구가 있다. 하루 세 번씩 ‘백규의 경구’ 말조심을 반복하면 없던 색시도 생긴다는 고사를 음미해 볼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