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의 금혼규정은 사관학교가 개교한 1946년도부터 유지되어 온 제도다. 금연, 금주와 함께 반세기를 훌쩍 지나 70년 가까이 요지부동 바뀌지 않은 금혼규정은 실제로는 결혼 금지를 넘어 아예 여자를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한 금녀규정이라고 한다.

여중생이 임신을 해도 학생의 인권임을 당당히 외치는 작금에 멀쩡하고 건강한 성인 생도의 이성교제를 학칙으로 막는 쌩뚱맞은 규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하다.

이러한 추상같은 규정을 어기고 약혼녀와 성관계를 가져 퇴교처분을 받았던 생도가 학교를 상대로 낸 퇴학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최근 승소했다, 성생활은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로 국가가 함부로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그런데 개인의 성생활을 참견하지 말라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 군 내부에서 적잖은 논란이 일고 있는 모양이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학칙도 시대상황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며 다수가 이를 반기는 분위기지만, 일각에서는 '엘리트 장교 양성이라는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판결'이라며 매우 마땅찮은 표정이다. 법원의 판결에 불만을 가진 보수 세력은 금혼규정을 어기고 거짓말을 한 중죄를 재판부가 고려치 않았다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금혼규정에 대한 찬반 논란은 양측 모두가 나름대로의 설득력이 있다. 군 관계자가 아닌 일반인이 장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의 규정에 대해 밤, 대추를 지적할 입장은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현실감 있는 운영의 묘가 필요하리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규제 아니라 선택에 맡겨야 하는 性

과거 여자대학에도 금혼규정이 있었다. 이화여자대학교가 기혼자의 편․ 입학 및 재학생의 결혼을 금지하는 ‘금혼(禁婚)학칙’을 폐지키로 한 때가 2003년이니 불과 십여 년 전까지도 살아있던 학칙이다.

여자대학이 금혼학칙을 정하게 된 까닭은 19세기말 조혼 풍습으로 인해 중도에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여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금혼 조항을 두어 여성의 고등교육을 가능케 했으니 애초의 금혼 규정은 여성의 학습권을 지켜주기 위한 눈물겨운 보호책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며 금혼규정으로 인해 학업을 포기해야하는 역작용이 불거졌다. 급기야 퇴교 당하지 않기 위해 결혼사실을 숨기고 혼인신고도 미루는 사태까지 벌어지자 ‘시대착오적이며 비현실적 학칙’ 폐지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드디어 ‘학칙으로 입학과 졸업자격으로 기혼여성을 금지하고 있는 금혼학칙은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행위’ 라는 진정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됐고 인권위가 이를 조사하면서 금혼학칙은 역사에 묻히게 되었다.

금혼 학칙 폐지를 결정하며 이대 측은 ‘교육환경의 변화와 구성원들의 인식 전환, 그리고 금혼 조항이 결혼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는 헌법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 등을 폐지 이유로 들었다. 학생의 결혼문제는 규제의 대상이 아닌 학생 스스로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이었던 것이다.

여자대학 금혼학칙폐지의 예를 참고한다면 사관학교의 금혼학칙 정비도 답이 나오지 않을까. 법(法)은 물(水)와 가다(去)가 합한 글자다. 흐르는 물을 거스르지 않고 순리에 따름이 곧 법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