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酒席)에서 술이 거나해지면 거친 말이나 행동으로 행패를 부리는 자가 으레 나타난다. 저자거리 장삼이사들의 술자리는 물론 사회지도층이나 정치권의 잘난 사람들도 막말과 물리력 행사 등 ‘주석난동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사례를 예나 지금이나 심심치 않게 보고 있다.

제129회 임시국회 열렸던 1986년 3월21일 오후7시, 서울 회현동 소재 요정 ‘회림’에 육군 고위 장성 8명과 천영성 국회국방위원장을 비롯한 여야 국회의원 10명 등이 합석하여 술자리가 벌어졌다. 육군 고위 장성은 참모총장 박희도 대장(육사12기), 참모차장 정동호 중장(육사 13기), 인사참모부장 이대희 소장(육사15기), 총장비서실장 구창회 준장(육사18기) 등이었다. 이들은 세칭 ‘전두환계의 선봉장들’이었다.

약속시간에서 30분 정도 늦게 주석에 들어선 김동영 신민당 총무는 좌중을 둘러보고 한 마디 내뱉었다. “허, 힘 있는 거물은 안 오고 똥별들만 먼저 모였구먼....”. 이같은 김 총무의 일갈에 판이 얼어붙었고, 한 시간 쯤 뒤에 나타난 이세기 여당 총무는 술기운이 오른 정동호 참모차장에 붙들려 계속 시달림을 당했다. “이세끼 총무, 뭐 이렇게 늦게 오고 그래, 그러니까 야당 측에서 우릴 보고 똥별이라고 하지 않나 말이야....”

정 차장으로부터 목덜미 근처 셔츠를 잡힌 이세기 총무가 목이 죄어짐을 느껴 “아야앗!” 하고 소리를 지르자 민정당의 남재희 의원(청주출신)이 “뭣하는 짓이야, 이게” 하고 소리를 지르며 벽에 연거푸 유리컵을 내던졌다. 남 의원은 뒤늦게 참석, ‘똥별’ 발언을 알지 못했으나 군 장성들이 국회의원을 대하는 거친 행동을 묵과할 수 없었다.

남 의원이 던진 유리컵 파편에 눈두덩이를 다친 이대희 소장은 발길을 날려 남 의원의 안면을 강타했다. 앉은 자리에서 벌렁 뒤로 나자빠진 남 의원은 왼 쪽 입술에서 피를 흘리며 제정신을 가누지 못했다. 처음에는 누구한테 맞았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박희도 총장과 이세기 총무, 그리고 이 소장의 사과로 일단 화해했고, 장소를 옮겨서는 남 의원과 이 소장은 기념으로 피 묻은 손수건을 교환까지 했다.

당시 보도를 압축한 위의 주석소동이 그 유명한 ‘국방부 회식사건’이다. 이 사건은 이후 신민당이 들고 일어나 정치문제화 됐고, 이기백 국방장관과 박희도 총장의 사과를 받고 당일 폭행 장성에 대한 응분의 조치를 요구하는 선에서 일단락 됐다. 육군은 정동호 참모차장을 전역시키고, 이대희 소장은 전방부대로 좌천시켰다. 참담하고 부끄러운 주석폭행극이라 하겠다.

주석(酒席)사건에 감초 같은 국회의원들

그로부터 27년 후인 요즘, 이번에는 국회의원과 경찰 고위층 간의 주석에서 폭행시비가 벌어져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경향신문, 뉴시스, 이투데이, 채널A 등의 보도에 의하면 지난 6월 17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 후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김태환 위원장(새누리당) 등 여당 국회의원과 이성한 경찰청장 등 경찰간부들이 국회 인근 일식집에서 회식 중 술이 몇 순배 돌자 경찰 고위층에 불만을 품은 아무개 의원이 모 경찰 간부를 향해 행패를 부렸다는 것이다.

국방부 회식사건은 국회의원이 육군 장성한테 당한 일이지만 최근의 ‘국경(國警)사건’은 여당 국회의원이 가해자이고 경찰고위층이 피해자(당사자들은 부인하고 있지만)라는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공통점은 약방의 감초처럼 국회의원은 빠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로보아 국회의원은 참 잘 난 사람들인 모양이다.

어찌됐던 이같은 주석 추문들은 지도층과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조소(嘲笑)를 가중시키고 힘 있는 자들에 대한 각성을 강하게 촉구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선인들의 ‘주석교훈’을 들려주려고 한다. “술을 마시되 덕(德)이 없으면 난(亂)하고, 주흥은 즐기되 예(禮)를 지키지 않으면 잡(雜)된다. 따라서 술을 마실 때에는 덕과 예를 갖춘 바른 태도를 지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