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수는 신께 바쳐지는 소박한 공양물이었다.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아침 새벽 우물에서 맑은 정화수를 그릇에 떠 장독대에 놓고 두 손 모아 남편과 자식의 무병함과 성공을 빌었다. 전지전능한 신도 맑은 물을 즐겨 마신다고 믿은 것일까. 천 수백년 민족의 정화수 공양은 아직도 그 잔영이 민간의 삶 속에 남아있다.

이렇듯 우리 조상들은 우물을 매우 신성시 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부인 알영의 탄생설화도 우물로 비롯된다. 어린 박혁거세는 양산 기슭에 있는 나정(蘿井) 인근에서 육촌(六村) 사람들에게 발견되었고 알영은 알영정(閼英井)에 나타난 용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난 것으로 엮어진다.

용은 바다 속 용궁의 주인이지만 우물에도 산다고 믿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보면 재미난 기록이 많이 나온다. 우물은 용궁으로 통하는 입구로 여겨지는 것이다. 신라 때 화랑 출신인 명랑(明朗) 법사가 있었다. 법사는 용궁에 들어가 비법을 배웠으며 자기 집 우물에서 분수처럼 솟아나왔다고 쓰여 졌다.

작제건(作帝建)은 고려 태조 왕건의 조부이다. 그는 용왕의 딸인 용녀(龍女)와 혼인한 것으로 그려진다. 용녀는 우물을 통해 서해바다 속 용궁을 자주 나들이 했으며 은그릇으로 물을 떠 사용했다고 한다. 개성의 고대 우물 대정(大井)은 바로 작제건과 용녀의 설화가 얽힌 유적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물에 대한 제사의 격도 국가가 지내는 제사와 동일시했다. 십수년전 경주에서 신라시대 우물을 발굴 했는데 매우 흥미로운 유물이 나왔다. 이 안에서 8〜9세로 추정되는 아이의 유골이 나온 것이었다. 조사단은 아이가 단순히 우물에 빠져 익사한 것이 아니라 제사를 지내면서 공양품으로 바쳐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성덕대왕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대종을 만들면서 아이를 끓는 물에 공양했다는 에밀레종의 설화도 실제가 아니었을까.

우물은 백성들의 생명과 같았으므로 임금은 우물을 시정의 주요한 사항으로 삼았다. 조선 태종대(1415AD) 한양에 가뭄이 심각했다. 임금은 도성 안 5가구마다 우물 1개소 씩을 파도록 어명을 내렸으며 도성 백성들은 극심한 가뭄에도 고통 받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상수도사업은 모든 행정의 우선사업으로 여겨진다. 국가는 맑은 물 사업과 질 좋은 상수도를 공급하기 위해 매년 수 조원을 투입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은 이런 혜택을 보지 못하는 소외지대가 많다.

충북은 옥천, 단양, 음성, 충주등지의 여러 마을에서 석회질이 많이 포함된 식수를 사용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한다. 옥천 대청댐 상류 군북면 석호리 45가구의 경우는 아직도 주민들에게 상수도를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소득이 낮은 이들 가정에서 식수를 확보하기 위해 심각한 고통을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수 백만원 짜리 정수기도 3개월을 넘기지 못 한다고 주민들은 호소한다.

이 지역의 많은 주민들은 암은 물론 각종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석회질은 산화칼슘으로 작은 분자 상태로 물에 녹아 있는 상태를 말한다. 전문가의 견해로는 이러한 칼슘이 장에 흡수되면 혈관 속에서 침전, 스케일을 형성하고 혈액순환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특히 췌장에서 일어나면 당뇨병이 되고 많은 모세혈관들에서 발생하면 고혈압이 된다고 한다.

중국 구이린(桂林)은 천하 제일의 경치로 널리 알려진 곳. 그런데 이 지역 주민의 평균수명은 50세에 불과하다. 중국인 평균수명이 70세를 훨씬 넘기고 있는 것에 비하면 20세 정도 낮은 셈이다. 왜 이들이 이렇게 단명한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석회질에 오염된 물 때문이라고 한다.

대청호를 완공한지 33년. 어떻게 지금까지 수몰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상수도 혜택마저 주지 못한 것일까. 정부와 지자체는 석회수질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이 지역주민들의 고통을 빠른 시일 내에 해소해야 할 것이다. 대청호 마을에서 정화수를 떠 놓고 아침마다 빌고 있는 이 곳 촌로들의 심경을 헤아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