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수백년전 당나라 수도였던 시안(西安). 이곳은 고대 신라인들의 꿈과 희망이 서린 도시였다. 신라 뿐 아니고 백제, 고구려 지식인들도 동경했으며 가보고 싶은 곳이었을 게다. 왕도 경주의 많은 젊은이들이 시안에 유학하고 싶어 했다. 한창 시안이 번창했을 때는 인구 1백만의 대도시로 신라 유학생만도 2백명이나 됐다는 기록이 있다. 왕자라는 높은 신분의 귀족은 물론 스님과 가난한 서민의 자제들도 시안에 왔다.

백제가 멸망하고 의자왕을 위시한 1만명의 부여인들이 잡혀 온 곳도 시안이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은 뱃길로 백제 포로들을 데리고 시안에 왔으며 당시 황제였던 고종에게 의자왕을 바치는 의식을 거행한다. 지난 수년간 시안 인근에서는 백제 유민들의 무덤이 많이 찾아져 고대 기록들을 증명했다. 가까운 고대 도시 낙양 북망산에서는 의자왕의 묘소가 발견되었으며 시안 여러 곳에서도 의자왕의 딸들과 당나라 관리가 되었던 백제 유장(遺將)들의 무덤과 묘비가 발견되기도 했다.

당은 고구려를 정복하고는 유민들을 잡아 시안 초당진이라는 곳에 이들을 살게 했다. 고구려인들이 집단 거주한 이곳은 고력거촌(高力渠村)이라 불리 운다. 나라가 망한 이들에게 있어서는 시안이 한과 눈물의 땅이었는지 모른다.

혜초스님은 황제가 머물던 서문 남쪽 천복사(薦福寺)에서 불경을 연구했다고 한다. 스님은 이 절에서 수학한 후 멀고도 먼 석가모니의 탄생지 까지 고행의 수도여행을 했다. 그래서 남긴 기행이 바로 왕오천축국전. 신라 고승 자장, 의상, 혜소, 현범, 지인, 승장이 시안에 와 불도를 닦아 이름을 냈다. 중국인들에게 아직도 지장보살로 미화되고 있는 김교각 스님은 신라왕자 출신으로 가장 이름을 빛낸 인물이다.

고운(孤雲) 최치원은 12세에 당나라에 들어가 빈공과에 급제한 뒤 율수현의 현위(縣尉)가 되었다. 시문에 뛰어났던 그는 시안에서도 문명을 날렸다. 그가 고을 남쪽의 초현관(招賢館)에 가서 놀면서 억울하게 죽은 두 여인의 사연을 풀어준 설화는 우리의 고대 설화집 수이전에 기록된다.

황소의 난 때는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써 당대 중국황실과 지식인들을 감동시켰다. 그 화려하고 유려한 문장은 천 수백년이 흐른 지금도 역사, 국문학자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시안의 고대 한류는 바로 최치원이었던 셈이다.

박 대통령이 중국 방문 중 시진핑 주석과 만난자리에서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인용하자 시 주석은 한·중 관계가 아주 돈독하다는 것을 고운의 한시 ‘범해(泛海)’를 인용하여 화제를 모았다. 시 주석은 “한국과 중국은 역사가 유구하다. 당나라 시대 최치원 선생님은 중국에서 공부하시고 한국에 돌아가셨을 때 ‘괘석부창해 장풍만리통(掛席浮滄海 長風萬里通)’이란 시를 쓰셨다”고 운을 뗐다.

고운의 명시 범해(泛海)는 시안에서 고향 경주를 그리워하며 쓴 ‘추야우중(秋夜雨中)’에 비견되는 명문이다. 이 시는 고운이 중국에서 귀국하면서 배 위에서 지은 것으로 보인다.

‘돛달아 바다에 배 띄우니(掛席浮滄海) /긴 바람 만리에 나아가네(長風萬里通) /뗏목 탔던 한나라 사신 생각나고(乘槎思漢使) /불사약 찾던 진나라 아이들도 생각나네(採藥憶秦童) /해와 달은 허공 밖에 있고(日月無何外) /하늘과 땅은 태극 중에 있네(乾坤太極中) /봉래산이 지척에 보이니(蓬萊看咫尺) /나 또 신선을 찾겠네(吾且訪仙翁)’

박 대통령은 이번 중국방문의 맨 마지막 여정으로 시안을 방문하여 이곳에 진출한 우리 기업 인사들을 만나고 진 시황릉 등 고대 유적지등을 돌아봤다.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 시안방문은 첫 번째라고 한다. 중국 언론은 박대통령의 중국문화에 대한 인식과 친화력에 크게 호감을 표시했다.

천수백년 신라인들의 꿈의 도시이자 우리 조상들의 뼈가 가장 많이 묻힌 시안. 신라를 개국한 박혁거세의 후손인 박대통령의 시안 방문은 한·중 우호의 시대를 여는 새로운 한류 역사로 기록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