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이나 사찰 등 현판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추사 김정희가 쓴 ‘유재(留齋)’로 여겨진다. 유재는 김정희의 제자이자 이조참판을 지낸 남병길의 호다. 그 뜻이 참으로 깊다. 기교를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화로 돌아가게 하고, 녹봉을 다하지 않아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 재물을 다하지 않아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 내 복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자손에게 돌아가게 한다는 의미다.

이원종 전 충북지사는 재임시 집무실에 ‘유재(留齋)', 현판 복사본 액자를 걸고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는 1998년부터 2007년까지 8년간 도민의 지지와 신뢰를 한 몸에 받았다. 당시 도민의 50%대 지지율을 보여 마음만 먹으면 도지사 3선이 무난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2006년 1월 3일 3선 불출마를 선언한 후 같은해 6월 29일 이임식과 함께 공직을 떠났다. 그래서 이원종하면 ‘아름다운 퇴장’의 롤모델이 됐다. 그는 ‘퇴’를 분명히 할 줄 아는 하산(下山)의 미학을 아는 사람이다.

그처럼 파란많은 인생을 산 사람은 드물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체신대를 나와 우체국직원으로 근무했다. 폐결핵으로 절망에 빠졌다가 성균관대에 편입해 행정고시를 패스해 서울시 사무관으로 변신했다. 관운이 무척 좋은 편이다. 관선 충북지사에서 서울시장으로 발탁됐다. 충북지사 8년동안 도민의 사랑과 지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공직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관선 충북지사 시절엔 '우암상가'가 무너지는 대형사고가, 서울시장시절엔 '성수대교 붕괴'로 모진 시련을 겪었다.

그는 ‘소통의 달인’이다. 부드럽지만 강한 사람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몸에 밴 사람이다. 어떤 자리에서도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등 유머감각과 말솜씨로 상대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아가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데도 선수였다. '軟性(연성)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사람이다. 그래서 관선 서울시장과 충북지사, 민선 충북지사 2번씩 연임하면서 두루 존경을 받았다. 그는 정당과 지역, 인맥과 무관하게 골고루 호평을 받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퇴임 후에도 총리 인사 때마다 유력 후보로 거론돼 기대감과 아쉬움을 동시에 안기곤 했던 충북의 '얼굴 마담' 이다

퇴임 후 성균관대 석좌교수로 지낸 이 위원장은 자신의 좌우명 대로 충북도를 비롯한 전국 자치단체, 기업체 등의 초청을 받아 후배 공직자들과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며 행정경험을 녹여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자신의 인생과 행정 경험을 토대로 젊은이들에게 줄 교훈을 적은 '인생 네 멋대로 그려라'를 출간했다. 이 위원장은 이 책에서 희망, 성공, 행복, 인생, 리더, 조직이라는 여섯개 키워드를 중심으로 21세기 성공리더의 필요 조건을 나열했다. 책은 후배 공무원들과 지인들에게 '이원종 향수'를 다시 일으켰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충북지사 재임시 10여년전 충북의 미래산업에 대한 지향점을 제시하고 뿌리를 내리게 한 것이다. 'IT·BT'는 충북의 대표적인 브랜드 이미지다. 오송이 바이오산업의 메카로 자리잡게 한 장본인이다. 그래서 충북에 100년 먹거리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름다운 퇴장 7년만의 화려한 공직복귀

'3선 불출마의 변(辯)'으로 ‘유재’를 실천해 ‘아름다운 퇴장’을 했던 이원종 전 충북지사가 지난 19일 7년만에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 공직에 복귀했다. 이 위원장은 비수도권 발전의 핵심적 역할을 할 위원회 수장으로서 정부 정책 자문과 심의 등 중책을 맡게 됐다.

이원종 전 지사의 지역발전위원장에 발탁에 대해 여야 모두 환영하는 분위기다. 마침 성균대 출신이어서 기대가 크다. 박근혜 정부의 ‘성균관대’ 시대에 걸맞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MB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지방이 홀대받고 수도권 규제완화 움직임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지방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지역발전위원장을 맡게 된 것은 지방과 국가발전을 위해서도 잘 한 일이다.

이 위원장이 지역발전위원회가 대통령에게 건의에만 그치지 않고 지역의 목소리를 국정에 반영해 ‘비수도권 구원투수’로 성공한 위원장이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