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후반 월남전에서 탁월한 작전 지휘능력을 떨쳤던 채명신(蔡命新) 전 주월한국군사령관은 베트남 전쟁 시 사망한 아군과 부상자를 적진에 남겨두지 않고 반드시 구출하도록 명령했다. 그는 전투에서 밀려 아군 중상자와 전사자를 적진에 둔 채 퇴각했다는 보고를 받으면 “이역만리 전장에 와서 부상당한 전우와 전우의 시체를 적의 손에 넘겨주고 오는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호통, 구출 작전을 지시하여 성사시켰다.

채 사령관은 당시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전우의 시체와 중상자를 가지고 오라. 병력이 부족하면 다 들어가도 좋다. 1개 분대가 전멸하면 1개 소대, 소대가 전멸하면 중대, 대대가 모두 들어가서 데려 와라!” 이 명령에 따라 중대장은 종일 치열한 전투를 벌여 소기의 전공(戰功)을 세울 수 있었다. 전장에서 사령관-장교-사병 간의 끈끈한 공동운명체의 일체감 조성에 전력을 기울인 것이다.

제58회 현충일을 맞아 채명신 장군의 아군(我軍) 장병 구출 의지를 여기서 상기 시키는 것은 그만한 절실한 이유가 있다. 6.25전쟁 과정에서 북한군과 중공군에 잡힌 국군포로의 일부가 아직도 생존한 채 남쪽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도 한탄(恨歎)스럽기 때문이다. 여려 사정과 이유를 들고 있지만 역대 우리 정부는 이들 국군포로 구출에 너무나도 무력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하겠다.

그러면, 국군포로 실상은 어떤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시 유엔군사령부가 유엔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전쟁 중 인민군과 중공군에 포로로 붙잡히거나 실종된 한국군은 8만2,000여 명으로 추산했다. 북한은 포로교환 시 그 중 8,300여 명만 송환했다. 국가정보원은 2006년6월 공개한 자료에서 탈북자 신문 등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국군포로는 총 1천734명이고, 이 가운데 생존자는 548명, 사망자는 885명, 행방불명자는 301명이라고 밝혔었다.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국내 송환운동을 벌이고 있는 단체인 (사)물망초 이사장 박선영 동국대 교수(전 국회의원)는 올해 4월 29일 중국 인근 북한 탄광지역에 국군포로 113명이 생존해 있다며 그 명단을 공개했다. 금년 2월 기준 함경북도 샛별군 소재 고건원 노동자구에 58명, 하면 노동자구에 32명, 룡북 노동자구에 9명, 자강도 교화소(교도소)에 1명, 행방불명11명 등 국군포로 113명의 이름 및 거주지를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국군포로 귀환에 적극 나서라

국방부에 따르면 1990년 이후 북한을 탈출, 한국으로 돌아온 국군포로는 조창호(1994년 10월23일 귀환) 소위 등 80명으로 이 중 51명이 생존해 있다. 국군포로 500여 명이 이처럼 북한에 생존하고 있는데도 정부의 귀환노력이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역대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도 문제였지만, 북한 정권이 국군포로 존재 자체를 불인정, 어떤 협상에도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측은 6.25 전쟁 후 북한에 남은 국군포로는 모두 자원하여 북한을 택함으로써 ‘해방전사’로 편입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이같은 궤변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간 북한에 억류되어온 국군포로들은 ‘괴뢰군포로’라는 딱지를 붙이고 탄광의 발파공, 벌목공, 불발탄 처리 등 위험하고 고된 작업을 강요받으며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왔다고 생환 국군포로들은 생생히 증언했다.

북한 소재 국군포로들은 80~90세의 고령층이어서 서둘러 송환되지 않으면 남쪽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한(恨) 많은 생애를 북녘 땅에서 마감하게 된다. 남으로 돌아올 수 없다면 남쪽의 이산가족들과 상봉할 수 있는 기회라도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좀 더 적극적으로 국제여론을 환기 시키고 남북대화를 통해 국군포로들과 그 가족들의 염원을 최소한이라도 실현시켜야 한다.

현충일을 맞아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들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기리는 일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절실하게 추진돼야 할 호국보훈 최대 현안 중의 하나는 국군포로들의 귀환과 그 가족들의 상봉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전장에서 신명을 바쳐 국가의 자유수호 명령을 수행한 국군포로를 우리 정부가 끝까지 구출하지 못한다면 어찌 국가의 사명을 다한다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