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 중반 신라 진흥왕은 고구려 땅이었던 충주를 국원경(國原京)으로 삼는다. 당시 국원에 붙인 경(京)이란 호칭은 왕도 다음가는 부도의 의미. 진흥왕이 왜 이토록 충주를 중요한 곳으로 여겼을까. 충주는 지리적 요충이자 한강은 대당외교의 첩경 루트이면서 대 백제제어 등 신라의 명운을 좌우할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왕은 숱한 젊은 전사들을 순국의 제물로 삼아 끝내 한강장악의 소망을 이룬다.

진흥왕은 그 이후 왕도에 살고 있는 육부의 귀족과 가야인들을 국원에 대거 이주 시켰다. 그만큼 국원경을 신라영역으로 공고히 하고자 했던 것이다. 충주에 이주해 온 가야인들 가운데는 강한 무사집단은 물론 철기 제작의 장인과 예술가들도 많았다.

진흥왕이 가야금의 명인 우륵을 만난 것도 이 시기. 왕은 중원을 순행 할 때 우륵이 가야금을 잘 다룬다는 소문을 듣고 가궁(하림궁)으로 불러 탄주케 했다. 진흥왕과 우륵의 운명적인 만남은 오늘날 가야금이 민족의 악기로 계승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리고 1백년 후 문무왕이 등장한다. 그는 신라왕 중 가장 용감한 전쟁영웅이었다. 왕은 평양성을 점령한 후 개선군을 이끌고 귀경하면서 충주를 지나게 된다. 이때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왕은 국원경 사신 용춘이 욕돌역(褥突驛/지금의 주덕 신니면 용원리?)에서 베푼 잔치에 한 무동이 추는 가야무를 감상하는 것이다. 왕은 가야춤에 매료 돼 춤이 끝나고 무동을 불러 어루만져주며 특별히 금잔으로 술을 권하고 보물을 하사하는 것이다. 왜 문무왕이 가야춤을 보고 이렇게 감동한 것일까.

문무왕의 어머니는 바로 가야 출신인 김유신장군의 둘째 동생 문희가 아닌가.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가야춤을 보고 자라 잠시 향수에 젖은 것은 아닌지. 아니면 중원지역에 살고 있는 가야세력에 대한 배려차원은 아니었을까. 당시 가야 춤을 춘 소년은 15세의 나이로 이름은 능안(能安)이었다고 한다.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문무왕은 13년(673AD) 9월 충주에 주위 2,592보(步)의 성을 쌓았다고 돼 있다. 1보는 6척(약1.8미터)으로 이를 환산하면 길이는 약 4,665미터가 된다. 성의 규모로 보면 청주산당산성의 크기이며 보민을 목적으로 한 읍성으로 상정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충주 호암지구 택지개발사업 부지에서 통일신라시기에 만들어진 토성이 발견됐다는 보도가 눈길을 끈다. 드러난 토성의 길이는 350m로 기단을 석축으로 다진 후 흙을 쌓은 전형적인 삼국시대 판축토성이다. 이곳에서는 인화문 토기와 기와류등이 출토됐으며 전문가들은 토성이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 까지도 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발굴전문가들은 이 토성이 고려시대 보축된 충주읍성과의 연결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호암지 토성 중원경 유산으로 보존해야

토성이 발견된 호암지는 1931년 일제강점기 축조된 저수지. 이 저수지는 ‘모리래들’로 불리는 달천평야의 농업용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바로 충주의 진산으로 일컬어지는 남산(남산성)과 근거리. 동쪽 계명산 아래 안림동 염바다라는 곳은 과거에 다수의 신라계 와당등이 출토돼 중원경시대 유지로 알려지고 있다.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문무왕을 도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문장가 강수는 본래 임나가라 사람으로 중원경 사량(沙梁)출신이라고 돼 있다. 사량은 사탁부(沙啄部)의 이칭이기도 하며 바로 신라육부의 귀족집단. 김유신장군을 위시한 진골세력도 사량부출신이다.

강수는 사량 귀족으로 부곡(주덕)에 살았던 미천한 대장간의 딸을 사랑하여 끝내 결혼까지 하는 계급타파의 로망을 실천한다. 사실 지방 학계는 강수가 살았다는 ‘사량’에 대해서 막연히 ‘모리래’ 즉 달천부근으로 만 추정해 왔다.

혹 이번에 발견 된 호암지 토성이 삼국사기에 기록 된 문무왕대 축조한 성이자 신라육부 호민이 살았던 ‘중원경 사량부’는 아니었을까. 앞으로 발굴과정에서 청주상당산성 공남문 아래에서 출토된바 있는 사량부명(沙琢部銘) 와편이라도 찾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크다.  호암지 토성은 가능한 훼손하지 말고 고대 중원경 역사의 귀중한 유산으로 보존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