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도미부인은 정절의 화신이다. 개루왕의 강압과 회유에도 불구, 정조를 지켰으며 부귀영화를 뿌리치고 왕궁에서 탈출하지 않는가. 그리고 왕에 의해 장님이 된 사랑하는 남편을 서해 외딴 섬에서 찾아내고 만다. 삼국사기 열전에 나오는 백제여인의 처연할 만큼 아름다운 얘기는 한때 세계적 거장 첸카이거를 감동시켰다고 해서 화제를 모은바 있다.
 
도미부인이 살았을 당시 백제인은 어떤 모습이었으며 무슨 생각들을 하고 살았을까. 삼국사기 백제기록은 너무 간단하여 시대 풍속이나 민초의 생각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왕조를 중심으로 엮은 기년체여서 어려움이 크다. 그래서 중국 측의 기록이나 고고학적 사료를 원용하는 것이다.

고대 중국 양 나라 시기에 그려진 ‘직공도(職貢圖)’가 있다. 현재 남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양나라에 조공을 온 백제·왜국 등 외국 사신들을 모사한 것이다. 이 그림을 보면 백제 사신은 귀인의 얼굴에 의관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삼국사기 복식조 기록을 보면 백제 관리들은 흰 가죽 띠를 두르고 흑색의 가죽신에 비취색 옷을 입었다고 돼있다. 모자는 은화(銀花)로 장식했으나 조회 때 관 양쪽에 새의 깃털을 꽂았다. 직공도 사신의 모습은 삼국사기 기록을 입증하는 귀중한 그림이다.

여자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삼국사기에는 기록이 없으며 고도 부여에서 출토되는 여자 도용(陶俑)도 희귀하기만 하다. 고대 중국 북사(北史) 백제전에 아주 재미난 기록이 나온다. 백제여인들은 얼굴에 분을 바르거나 눈썹 그리는 것을 즐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녀들은 머리를 땋아 뒤로 내렸다가 부인이 되면 두 갈래로 나누어 머리 위로 틀어 올렸다고 한다. 도미부인도 이런 쌩얼에 두 갈래의 머리를 틀어 올린 것으로 유추해도 될 것 같다.

역시 중국 측 기록에 백제의 법은 비교적 엄했다고 한다. 반역을 한 사람은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들은 노비로 삼았다. 관리로 뇌물을 받으면 3배를 배상하고 죽을 때까지 관리의 임용이 금지됐다. 노비를 3명 바치면 사람을 죽인 자의 경우도 용서하는 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10여년 전 부여 쌍북리에서 귀중한 목간(木簡) 사료가 출토된바 있다. 목간이란 종이가 없던 시대 나무를 굵은 젓가락처럼 깎아 면을 만들어 사용한 것을 말한다. 이 목간에는 ‘那○內連公’이란 묵기가 확인됐는데 학자들은 ‘연(連)’이란 글자는 일본 고대 야마토(大和) 정권의 하사 성(姓)인 ‘가바네’로 해석한 바 있다. 이 목간의 주인공은 왜국에서 청운의 품을 안고 부여에 온 귀족이 아니면 유학생이었을 게다.

2년전 백제고도 부여 구아리에서 또 10여점의 목간이 발굴됐다. 백제말기 어떤 가난한 사람이 권력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관직을 얻기 위한 청탁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보내주신 편지 삼가 잘 받았습니다(所遣信來, 以敬辱之). 이곳에 있는 이 몸은 빈궁하여 하나도 가진 게 없으며 벼슬도 얻지 못하고 있나이다(於此貧薄, 一无所有, 不得仕也)…그러나 좋고 나쁨에 대해서 화는 내지 말아주십시오. 음덕을 입은 후 영원히 잊지 않겠나이다(莫瞋好邪, 荷陰之後, 永日不忘)."

내용을 공개한 전문교수는 이 편지가 제대로 전달된 것은 아닐 것이라고 해석했다. 만약 전달 됐다면 받은 측에서 불에 태웠거나 없앴을 거란 얘기다. 벌금을 3배로 물고 평생 관리임용이 금지되는 법이 있었으니 고이 보관 할 이유가 없다.

청탁자가 보내려다 그만 불발 된 것인지. 아니면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순간 나당연합군이 침공하여 최후를 맞은 것은 아닌가. 목간이 발굴 된 구아리 현장은 왕성에서 궁남지로 이어지는 대로의 오른편 동네로 관청과 민가가 밀집한 곳으로 추정된다.

목간들은 아득한 백제 사회상을 퍼즐처럼 하나 둘 조합해 주고 있어 소중하거니와 1천4백여년 전 부여사람들도 요즈음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 있다.